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76 - 무등산 원효사 본문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인 원효사(元曉寺)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절로서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던 중 경치가 좋은 무등산에 이르러 공부를 하다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1980년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신라 말기에 작은 암자로 창건되었으며, 고려시대로 넘어와서
충숙왕 대(1314 ~ 1339)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입증할 길이 없으나
문정왕후의 섭정 때 사세(寺勢)가 다시 일어났다.
조선시대에는 선조 때 서산대사의 제자이며 승병장으로 유명한 기허 영규(騎虛 靈圭, ? ~ 1592)스님이
이곳에서 수도한 바 있다. 그 뒤 1597년(광해군 1)에 증심사를 중창한 석경(釋經)스님이 중창하였다.
1636년(인조 16)에는 신원(信元)스님이 중수하였으며, 1789년(정조 13)과 1802년(순조 2)에는
선방과 법당을 신축하였고 1831년(순조 31)에는 절을 재중수하고 단청불사를 하였다.
함명 태선(涵溟 太先,1824 ~ 1902)스님이 지은 〈무진주 무등산원효암중수상량문〉에 의하면
1894년 학산대사(鶴傘大師)가 관청에 호소하여 재력을 시주받고 고을의 유지들의 도움으로 사찰을
다시 중건하였다고 한다. 원효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세를 유지해 오다가 6.25전쟁으로
사찰 전체가 전소되었다. 1954년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고려시대의 금동비로자나불상이 출토되었지만
1974년에 도난당하였다. 1980년에 와서 대웅전, 명부전, 요사 등의 전각을 세웠으며,
그 후 불사가 계속 이루어져 성산각, 개산조당, 종각, 누각 등의 건물이 세워졌다.
주차장에서 원효사를 향해 오르다 보면 최근에 세운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을 지나면 오랜세월 동안
이자리에서 길손의 역활을 했던 '원효사 입구(元曉寺 入口)라고 적힌 정감가는 돌비석이 서있다.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고 법당쪽에서 볼때 오른쪽에 위치한다.
범종에는 비천주악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욕망을 제압하고, 不二의 경지까지 힘들게 올라온
구도자를 환영하며 하늘의 천인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상징하여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범종각은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서있는 것이다.
(원효사에서는 불이문 역활을 하는 회암루와 일직선상에 범종각을 두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의 2층으로 된 회암루의 모습이다.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는 회암루
이 건물은 무등선원(無等禪院)으로 승려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 수행정진하는 곳이다.
선원에서는 안거(安居)라고 하여 여름과 겨울에 3개월씩 기간을 정하여 수행을 하는데,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 10월 15일부터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라 하고,
이 기간중에는 일체 외출을 금한체 수행에만 전념하며, 일정기간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기도 한다.
건물양식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1981년에 건축되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최근에 세운 지장보살과 두 금강역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연화대좌 위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좌상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고, 좌우협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정하고 있으며, 후불탱은 영산회상도가 걸려있다.
신중단의 신중탱화는 동진보살(위태천 혹은 위타천이라고도 한다.)이나 대범천왕, 제석천왕,
사천왕, 팔부신중 등의 신중을 모신 탱화를 말한다. 신중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수행정진하면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원효사의 신중탱은 투구를 쓴 모습의 동진보살(위태천)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범천과 제석천이 배치되어 있는 구도이다.
감로정(甘露井)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수각(水閣)
자애로운 엄마와 젖꼭지를 물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새긴 석조상이 수각 옆의 돌담 위에 얹혀 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감가는 모습이 아닐까. 사찰에선 본 적이 없는 모자상을
사찰 경내에 세워 놓은 석공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근래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약사전
원효사의 약사전에 봉안된 동방 약사유리광세계의 주불인 약사여래부처님이다.
오른손은 설법인,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고,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질병치료와 수명연장, 재앙소멸 등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이다.
약사전 내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좌상
훼손된 석탑 부재들을 다시 모아 쌓아 놓은 석탑이다. 문화재적 가치는 없어졌지만,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4단인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의 조성시기로 볼 때 고려시대 충숙왕 때 중창된 것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라 생각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1994년에 새로 지은 성산각이다.
제물을 주는 산신, 자식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복락을 선사하는 독성은 인간의 복을 관장하는 신들이다.
칠성여래, 독성(나한), 산신을 함께 모신 전각을 삼성각이라고 하지만, 원효사에는 성산각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불교 고유신앙이라기 보다는 도교나 토착신앙이 불교에 유입된 경우이다.
치성광여래 좌우로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시립하고 있는 구도이다.

성산각에 모셔진 독성탱인데, 독성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말한다.
석가모니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반존자(那畔尊者)로 더 잘 알려져있다.
명부전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각광 받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와서 크게 유행하였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하는데 지장보살은 고통 받는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보살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전각 안에는 지장보살을 비롯해 아난존자와 무독귀왕 등의 삼존상과 열 분의 시왕상, 판관, 녹사, 사자, 동자, 등이 봉안되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은 정면 1칸, 측면 3칸의 맛배지붕의 건물이며,
전각 안에는 원효사를 창건한 원효대사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15호 '만수사 동종(萬壽寺 銅鍾)'은 용뉴(종고리)에는 두 마리의 용이
배치되었는데 두 용의 몸체가 만나는 정상부분에는 불꽃에 싸인 여의주를 장식했다.
천판에는 음통 대신 동그란 구멍을 뚫었다. 상대에는 둥근 원 안에 범어 ‘옴’자를 동일한
간격으로 새겨 놓았다. 무늬를 새긴 유곽은 상대에서 떨어지게 배치하였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조각하고 ‘주상삼전하(主上三殿下)’라는 명문을 새겨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하대부분에는 1954년 대웅전 중수 때의 시주자 명단이
새겨져 있고, 당좌와 하대는 표현하지 않았다. 명문의 내용으로 보아 전라남도 담양
추월산의 만수사(萬壽寺)라는 절에서 1710년(숙종 36)에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개산조당 앞과 뒤에 위치하고 있는 석조호랑이 조각상과 석장을 잡고 있는 석조지장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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