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78 - 주흘산 혜국사 본문
경북 문경(聞慶)에 위치한 문경새재의 새재는 한자어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조령(鳥嶺)이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새재는 '새 鳥'의 새와 '재 嶺'의 재가 합쳐져 '새재'라고 부르게 되었고, 영남(嶺南) 지방이라 할 때 영남이란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조령(鳥嶺)을 기준으로 영(嶺)의 남쪽에 있다하여 영남(嶺南)이라 불렀다.
문경새재의 3관문(조령관)과 혜국사(惠國寺)를 품고 있는 주흘산(主屹山, 해발1,106m)은 문경의 진산(鎭山)으로 비경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혜국사의 옛길에 있는 여궁폭포는 하늘에서 칠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아래에서 쳐다보면 그 형상이 마치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 하여 여궁폭포라 불려지고 있다.
주흘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혜국사(惠國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서 신라 846년(문성왕 8) 보조국사 체징선사(體澄禪師 , 804~880)가 법흥사(法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을 하였다. 그뒤 고려 말 공민왕(재위 1351∼1374)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절에 피신했던 일이 있었다. 공민왕은 오래지 않아 개성으로 돌아갔고, 당시 왕은 절의 노고를 치하하며 재물을 내려주었다. 절에서는 이 재물로 가람을 중수하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은혜 惠'와 '나라 國'자를 써서 혜국사(惠國寺)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또 조선시대에 세조 임금이 역시 여기에 머물었다고 하는데,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크게 활약하였고, 임진왜란 당시에 청허(淸虛), 송운(松雲),·기허(騎虛) 대사 등이 이 절에 머물며 승병을 지도했다고 한다.
“혜국사중건기”에 의하면 1866년에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이 허물어지자 1867년 관찰사 이삼현의 도움으로 대웅전 3칸을 만들었지만 사운(寺運)이 점점 쇠퇴하여져 안적암에 속하고 본사는 폐하여졌다고 한다. 1927년 혜국사가 중건되었고,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지만 오랜 역사을 간직한 전통사찰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절이다. 1979년에 신중탱화에서 전신사리(全身舍利)가 나왔으며, 현재의 대웅전과 선방 등은 1987년에 중건한 건물이다.
↗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산이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알려진 문경새재에 있는 3개의 관문 중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남제1관이라고도 하는 주흘관(主屹關)인 제1관문이다. 제1관문은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하였다고 하며 3개의 관문 중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 제1관문을 지나 문경새재 오픈 세트장을 향해 걷다가 계곡 옆에 피어 있는 복사꽃이 활짝 핀 모습으로 길손들을 반겨주고 있다.
↗ 드라마의 사극이나 영화 촬영을 하기 위해 지어진 문경 오픈 세트장 전경
↗ 새재 오픈세트장에서 약 2Km의 가파른 콘크리트길을 올라서면, 신라 846년(문성왕 8) 보조국사 체징선사(體澄禪師)가 법흥사(法興寺)라는 이름으로 창건을 하였다는 혜국사(惠國寺)가 나타난다.
↗ 종무소를 겸한 요사채이다.
↗ 산당화(명자나무)와 六和堂(육화당)이란 편액이 걸린 요사채이다.
↗ 좌우의 요사채 사이에 축조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혜국사의 본존불이 모셔진 대웅전(大雄殿)이다.
↗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에 맞배지붕의 아담한 건물이다.
↗ 창호는 어칸문에는 4분합빗살문을 달았고, 좌우의 협칸에는 3분합빗살문을 달았다.
↗ 대웅전 안의 불단에는 아미타불좌상을 본존으로 좌우협시는 관세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을 함께 봉안하였다. 이 아미타여래 삼존상은 불상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수화승(首畵僧) 김문(金文)에 의하여 조성되어 숙종 10년(1684년)에 인근 금학사에 안치했던 불상으로, 현재 경북 유형문화재 제411호 "문경 혜국사 대웅전 목조삼존불좌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삼존상 뒤의 후불탱은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 대웅전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측벽에는 최근에 조성한 지장시왕탱이 걸려 있다.
↗ 대웅전 본존불을 중심으로 우측벽에는 최근에 조성한 신중탱이 걸려 있는데, 신중탱에는 예적금강과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여러 신중들을 그렸다.
↗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을 한 산신각에는 최근에 조성한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 건물양식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건물이다. 현재의 대웅전이 지어지기 전에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였지만 지금은 관음전이다.
↗ 관음전 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관음보살좌상과 백의관음보살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 절 입구 왼쪽에 있는 부도밭에는 과거 혜국사에 머물렀었던 스님들의 부도 4기와 탑비석 2기가 봉안되어 있다. 모두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이다. 부도는 연곡당사신지출세탑, 해월당여상지탑, 자영당대사성연출세탑, 해월당탑 등이고, 비석은 연곡 사신과 여상 스님의 탑비이다. 이 가운데 연곡 사신 스님의 탑비는 명문에 의해 1693년(숙종 19)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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