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208 -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성지, 영동 반야사 본문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208 -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성지, 영동 반야사

徐白(서백) 2026. 4. 16. 23:30

부산불교문화대학차안에서 피안으로사찰문화답사

   일시 : 2026년 4월 12일 

   장소 : 충북 영동 백화산 반야사

 

충북 영동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19년 경신년(720)에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분이신 상원(相源)스님이 창건하였다. 이 시기는 의상대사의 제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그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사찰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조 충숙왕 2, 1325년에 반야사를 중건했다고 한다

 

반야사(般若寺)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성지"이자, 영동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백화산 비탈의 돌들이 쌓인 모양이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꼬리를 세우고 서 있는 형상을 띠고 있는 이 호랑이는 영험한 기운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반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반야(般若)'는 일반적인 지혜가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중생들의 판단 능력인 分別智가 아니라, 집착에서 벗어나 텅빈 충만의 상태에서 존재를 바라보며 얻는 無分別智이다. 백화산을 구불구불 흐르는 석천의 모습이 마치 연꽃의 모양과 같으며, 이 연꽃 모양으로 흐르는 개울의 한 중심에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 대지에 반야사가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백화산을 구불구불 휘감아 흐르는 석천

기둥이 일직선상에 한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고 하는 이 문은 사찰로 들어 가는 첫 번째 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이고,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고, 공포는 다포식 공포이다.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일심)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는 일주문이다. 즉 일심(一心)을 뜻한다. 바꾸어 말하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인 것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벽화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에 모셔진 지장삼존상(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부처가 이 세상에 올 때까지 부처가 없는 세상에 머물면서 육도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보살이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육도에서 고통받고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 후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기에 대원본존 지장보살로도 불린다.

 

지장보살은 손에 수정구슬과 같은 명주와 육환장을 들고 있다. 염라대왕의 업경대가 벌을 주기 위한 심판대라면 지장보살의 명주는 명부에 밝은 광명을 비추어 선업을 찾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도구이다. 육환장은 지옥문을 두드려서 여는 도구로 사용된다.

극락전(極樂殿) - 극락전은 원래 반야사의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는 하품상생 수인을 취한 아미타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는 입상의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다.

아미타삼존불(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아미타불이라는 이름은 처음 인도에서 아미타유스(무량한 수명을 가진 자, 無量壽), 아미타브하(무량한 광명을 지닌 자, 無量光)라고 하는 두 가지 범어로 표현되었으나, 중국으로 전해졌을 때는 모두가 아미타라고 음사되었다. 즉 아미타는 이 두 가지 원명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이 아미타와 병행하여 무량수불, 무량광불이라는 의역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정토삼부경에 의하면, 일찍이 세자재왕불이 이 세상에 있을 때 아미타불은 법장보살이었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48()을 세우고,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쳐 48원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0() 전의 일이다.

 

그 뒤 아미타불은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를 지나서 있는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현재까지 설법을 하고 있다. 이 극락세계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백의관세음보살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한 신중탱

지장시왕탱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의 위쪽에는 칠성여래를 모셨고, 아래쪽으로는 칠원성군을 모신 칠성탱

신각과 산신각 내부에 모셔진 산신과 산신탱

범종각

사찰 마당에 위치하고 있는 석탑은 원래 현 반야사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석천계곡에 있었는데 1950년에 이전한 것이라고 한다. 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 석탑이고 1층의 탑신에 비해 2,3층의 탑신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탑신의 비례는 4:2:2)

1층의 옥개받침은 5단이고, 2층과 3층의 옥개석 받침은 4단으로 줄어들어 있다. 1층 기단의 각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고 정상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고려초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의 우측에 있는 나무는 극락전 앞에 있는 수령 약 500년 된 배롱나무이다. 이 나무는 조선 건국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꽂아 둔 것이 둘로 쪼개져 쌍배롱나무로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당나라의 현종이 사랑한 절세의 미인이 양귀비이다. 양귀비가 죽은 후 현종은 중앙 행정관청에 자미화를 잔뜩 심어 놓고 자미성(紫薇省)이라 불렀다. 자주빛 꽃이 피는 자미화가 바로 배롱나무다.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중국이 원산지이다. 한자명은 목백일홍(木百日紅), 자미(紫薇), 지방명은 간지럼나무, 백일홍나무, 백일홍낭(제주) 등으로 불린다.

배롱나무 꽃은 꽃중에 못난이꽃이라 하여 계집질만 하던 미운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묘옆에 심어 준다는 속설이 있다. 한여름 향기 없이 100일 동안 질리게 피어 있으니 죽은 자라도 얼마나 괴로울까?

 

그리고 배롱나무는 나무줄기의 매끄러움 때문에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대갓집 안채에는 금기시되는 수목이라 한다. 디딜방아가 남녀의 교합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절마당이나 선비들이 기거하는 서원이나 정자의 앞마당에 많이 심었다고 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서원과 정자 앞마당에 심은 것은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선비의 청렴을 상징하고, 오랫동안 피어있는 꽃은 학문에 대한 끈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라 한다.

 

절마당에 심는 것은 배롱나무가 껍질을 다 벗어 버리듯 스님들 또한 세속의 모든 번뇌와 삼독을 벗어 버리고 수행에 전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설법당(說法堂)

적묵당(寂默堂)

적묵당 뒤, 백화산 비탈의 돌들이 쌓인 모양이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꼬리를 세우고 서 있는 형상을 띠고 있는데, 이 호랑이 형상은 영험한 기운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1993년에는 현재의 대웅전을 건립하였으며,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은 경주의 옥석으로 제작하여 개금한 것이며, 그 제작시기를 알 수 없으나 오래전에 조성된 것이다. 그리고 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용마루 기와였던 청기와가 남아있다. 대웅전 건립 이후 지장전 및 여러 건물을 근래에 건립하였다.

석가모니삼존불(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신중탱

칠여래를 모신 감로탱 - 붉은 바탕에 금색 선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선묘불화이다. 중앙에 크게 적힌 '南無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나무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이는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와 필요에 따라 백억, 천억의 다양한 모습(화신)으로 나타나심을 의미한다. 좌우의 글씨는 '나무청정법신 비로자나불 (南無淸淨法身 毘盧遮那佛), 나무원만보신 노사나불 (南無圓滿報身 盧舍那佛)를 함께 적어 삼신불을 표현하였다. 삼신불(三身佛)은 불교에서 부처님의 몸을 성격에 따라 세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는 교리이다. 진리 그 자체인 모습(法身), 수행의 결과로 나타난 모습(報身), 그리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난 모습(化身)으로 나뉜다.

정심선사 진영

반야사 전경

백화산을 구불구불 휘감아돌아 흘려내리는 석천으로, 특히 이 장소는 靈泉이라하여 세조가 목욕한 장소라고 한다.

 

반야사는 세조의 윤허를 얻어서 중창불사를 하였다. 가람의 규모가 웅장해진 반야사를 왕도 한번 보고 싶어서 세조 10, 1464년에 속리산 법주사(복천사) 법회에 참석한 후 이 절에 행차를 하였다. 대웅전 부처님을 참배를 하고 물러나온 임금은 이 절에서 법회를 열도록 분부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이적이 일었다.

 

사자를 탄 문수동자가 임금님 앞에 나타나서 나를 따르라고 하였다. 세조는 기운에 압도되어 문수동자의 뒤를 따랐다. 망경대를 향해서 계류를 따라 계곡을 더듬어 올라갔다. 급기야 靈泉에 이르렀다. 세조는 문수동자가 시키는대로 그 영천의 물을 떠 마신다음 그 밑에서 기도를 하고 정성을 다하여 목욕을 하였다.

 

상감마마의 불심이 갸륵하시어 그 공덕으로 부처님의 은총이 있나이다.” 이렇게 외치고는 문수동자는 사라져 버렸다. 목욕을 하고 물밖에 나서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영천 위에는 연꽃이 만발하였다. 세조는 한동안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고, 절로 돌아와서 "般若"라는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는데, 이것이 지금껏 반야사에 보관되어 전해 내려오는 세조 어필이라고 한다.

만경대에 자리한 문수전 전경 - 망경대 문수전 앞에서 보는 아름다운 전경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문수전에서 바라본 산비탈의 호랑이 형상

문수전에 모셔진 문수보살상

문수전의 문수보살상 좌우에 봉안된 문수동자상

 

황도령과 처녀귀신 이야기

고려 충숙왕 때에 글재주가 좋기로 소문난 18세의 황도령이 황간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석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백일장에서는 물자와 뫼자를 몰라 낙방하고 말았다. 이에 크게 상심한 황도령은 그 길로 황간 반야사를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학식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일우스님께 학문을 배우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우스님이 가만히 보니 황도령 얼굴색이 점점 나빠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황도령이 한 처녀귀신에게 씌인 것이었다. 이에 일우스님은 황도령 전신에 금강경 5,149자를 빽빽이 써넣고 옷을 입혔는데 그날 밤 황도령을 찾아온 처녀귀신이 그 금강경의 힘에 눌려 괴로워하다가 황도령의 귀를 물어뜯고 도망쳤다. 그만 일우스님이 금강경을 쓸 때 황도령의 귀부분만 빼먹은 것이다. 그러나 황도령은 금강경 덕분에 살아났고 그 인연으로 출가했는데, 귀가 없다하여 무이법사(無耳法師)’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외 벽계정심선사 이야기도 있지만 너무 길어서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