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177 - 한국의 작은 티벳, 티벳박물관이 있는 보성 대원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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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의 사찰이야기177 - 한국의 작은 티벳, 티벳박물관이 있는 보성 대원사

徐白(서백) 2017. 6. 13. 12:12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에 있는 대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503(무령왕3) 아도가 창건하였고, 통일신라시대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1260(원종 1) 송광사의 제5대 국사인 자진이 크게 중창하고 중봉산을 천봉산으로, 죽원사를 대원사로 개칭하였다.

 

그 뒤 1731(영조 7) 도갑사 주지로 있던 탁오가 해감 등과 함께 법당과 부속전각을 중창하였으며, 필한이 아미타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1758년에는 태연 등이 중건하였는데, 혹은 1759년에 현정이 중건하였다고도 한다.

 

1766년에는 단청 불사와 더불어 지장보살상을 개금하고 시왕탱화를 조성하는 등 여러 차례의 중건 및 중수를 거쳤으며, 여순반란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수많은 전각과 부속암자가 있었다. 그러나 여순반란사건 때 대부분 소실되고 극락전과 요사채만이 남아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 현장 스님이 여러 전각을 지었고, 1993년에는 태아(胎兒) 영가천도를 위하여 태안(胎安)지장보살과 6지장보살 및 108동자상을 봉안하였다. 1996년에는 성모(聖母)산신을 모신 산신각인 성모각을 세웠다. 극락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자진국사부도(慈眞國師浮屠)는 높이 3미터로 극락전 옆에 건립되어 있다. 탑신은 팔각원당형이고, 중석에는 쌍잎 연화문이 심도 있게 부각되어 있으며, 상대석에는 앙련이 8()으로 두드러져 있고 맨 위에는 보주가 있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부도이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서기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경상북도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은 어느날 밤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말하였다.

 

아도!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아도!” 하는 봉황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 봉황이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3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메다가 마침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내고 기뻐 춤추며 산 이름을 천봉산이라 부르고 대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일주문의 동편으로 앙증맞은 작은 일각문이 세워져 있다. 대원사 일주문은 현재 공사중~! 

 

근래에 지어진 대원사의 사천왕루 모습.

대원사 석조불감은 부모공덕불을 모신 불감이다. 부모공덕불은 부모님에 대한 불효와 원망심을 참회하고 부모님의 깊은 은혜에 눈 뜨게 해주는 지혜(父)와 자비(母)의 부처님이다. 대원사 주지이신 현장 스님이 티벳 타시종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와 부모은중경, 오곡, 오보, 오약 등이 봉안되어 있다. 앞쪽은 눈물 흘리는 아버지불, 뒤쪽은 가슴에 맺힌 것이 많은 어머니불이라고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 위로 공중에 층층이 쌓여 있는 나머지 26개의 하늘나라는 인간이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인간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마지막 하늘인 도리천을 지나는 것은 곧 해탈을 뜻한다. 사찰에서 가장 마지막 문을 해탈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이제 부처님 나라, 불국정토이다. 진리를 상징하는 문으로 사찰로 들어가는 산문(山門) 중 마지막 문이며,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해탈을 추구하는 구도자가 천왕문을 지나 수미산 정상에 오르면 도리천이 있고, 도리천 위에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개의 사찰에서는 해탈문, 불이문, 진여문, 안양문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곳 대원사에서는 해탈문이나 안양문 대신 연지문이란 현판을 걸었다. 불이문에 해당하는 연지문을 넘어서서 극락정토의아미타구품인을 상징하는 9개의 석조연화돌판을 밟고 지나가서 몇 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극락보전 앞이다.  

하품하생에서 상품상생까지 구품을 나타내는 9개의 돌판 중 일부이다.

연지문은 극락정토와 중생들의 세상인 사바세계로 분절되는 경계이다. 연지문을 지나 극락정토에서 사바세계를 되돌아 본 모습이다.  

불음(佛音)을 전하는 범종을 안치해 놓은 건물로 단층의 건물에는 '범종각(梵鐘閣)'이라는 편액을, 중층으로 된 건물에는 범종루(梵鐘樓)’라는 편액이 주로 걸린다. 범종루는 허공계를 상징하고, 하늘의 천인들이 들려주는 주악소리, 즉 범천의 소리가 흘러 나오는 곳이므로 단층의 건물보다는 중층으로 된 루()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범종각은 일반적으로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고, 대개의 사찰에서는 법당쪽에서 볼때 오른쪽에 위치하는데, 대원사 범종각은 왼쪽에 세워져 있다.

 

불이문과 동일선상에 위치하는 이유는 욕망을 제압하고, 不二의 경지까지 힘들게 올라온 구도자를 환영하며 하늘의 천인(범종에 새겨진 비천주악상)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중에는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의미로 까지 확대되였다.

석조불족(石造佛足)과 극락전의 모습.

보성 대원사하면 태아령천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대원사에 가면 일주문부터 만나게 되는 빨간모자를 쓴 작은 석불상들이 눈길을 끈다. 바로 이 작은 석불들이 태아령을 표현한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불경에는 낙태의 죄악과 구원을 설한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이 있다.

 

경전에 의하면,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업 가운데 아무리 뉘우쳐도 씻기 어려운 다섯가지가 있으니, 첫째 아버지를 죽인 죄, 둘째 어머니를 죽인 죄, 셋째 태아를 죽인 죄, 넷째 부처 몸에 피를 낸 죄, 다섯째 대중의 화합을깨뜨린 죄이니라.”

 

경전은 다시 태아를 죽인 큰 죄를 지었더라도 부처님과 불법을 통해 지성으로 참회하고 태아의 영혼을 위해 지성으로 천도 공양하면 죄업이 소멸되고 이고득락(離苦得樂)한다.”고 하였다.

대원사 극락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은 정면 3,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대원사에는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10여채의 건물들이 있었으나 여순사건 때 모두 불타버리고 거의 폐허화된 상태였지만, 당시 극락전 건물만은 존속할 수 있었다. 극락전의 기단은 전면에 1미터 이상의 잡석 축대를 쌓아 중앙에 계단을 설치하였고, 양 측면 및 배면은 축대의 높이가 낮다.

 

초석은 자연석으로 덤벙주초 방식이며 기둥은 약간 배흘림이 있고 우주는 미세한 귀솟음이 보인다. 공포의 형식은 평방 위로부터 짜여진 다포형식으로 전후 각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를 각각 2구씩 배열하였으며 출목은 외3출목, 4출목이다. 천장은 하중도리 위로부터 우물천장으로 처리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 측면에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단청은 내외부 금모로단청을 하였다. 정면 3칸에는 모두 띠살문양의 4분합문을 설치하였다. 불단 위로는 중앙에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좌우보처로 두 협시불이 있지만, 원래는 1구가 한국전쟁 때 분실하였던 것을 근래에 다시 봉안하였다.

 

극락전에 함께 봉안되어 있는 칠성탱.

위태천을 중심으로 그려진 신중탱.

보물 제1861호로 지정되어 있는 보성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는 극락전 내부의 동쪽과 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로 관음보살도와 달마도를 각각 대칭적으로 배치하였다. 동쪽 벽에 그려진 달마대사도는 선종에서 도상화 되었던 혜가가 팔을 자르는 혜가단비(慧可斷臂)의 고사를 소재로 하였다.

 

큼직하게 그려진 달마대사와는 달리 혜가를 작은 크기로 그려 달마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부리부리한 눈에 붉은색 장포를 쓴 달마대사 옆에는 젊은 승려가 연꽃잎 위에 잘려진 팔을 들고 서 있다.

 

혜가단비 고사는 달마가 그의 문하에 들어오고자 하는 혜가에게 의지가 어떠한지 묻자 혜가가 자신의 열정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한쪽 팔을 잘랐다는 이야기이다. 혜가는 달마의 법통을 이어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된 인물로, 혜가단비의 고사는 선승 화가들에게 중요한 그림 소재가 되었다.

또한, 서벽에 그려진 관음보살도는 기암괴석과 대나무를 배경으로 파도 위의 연화대좌에 앉아있는 백의관음보살과 선재동자를 그렸는데,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의 뒤편에 서서 파랑새를 안고 있다.

 

이와 같이 관음보살도와 달마도를 주불전 벽면에 그린 사례로는 운문사 비로전의 벽화가 있다. 하지만 대원사 극락전의 벽화처럼 동서로 벽을 나누어 그리지 않고 후불벽 뒷면에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나란히 배치한 점이 다르다.

 

대원사 티벳박물관에 소장된 현판 기록을 참고하면, 1766년 대원사 대법당과 부속 건물을 중창하면서 단청과 불화 등은 1767년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벽화 역시 이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극락전에 있는 목탑의 모습.

극락전 동종 위의 목어와 동자상.

 

대원사자진국사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5)의 기단부는 하대와 상대로 구분되는데, 하대에는 16엽의 복련(伏蓮)이 시문되어 있고, 그 아래의 8변에 안상이 있다. 상대에는 하대와 대칭되게 앙련이 시문되어 있다. 탑신의 앞면에 慈眞圓悟國師淨照之塔(자진원오국사정조지탑)”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3자의 범자(梵字)가 양각되었다.

 

각 면의 모서리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으며, 명문이 없는 6면에는 신장상들이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낙수면이 기왓골로 처리되었고 이중의 부연이 있다. 상륜부는 원형석 3개를 올려 놓아 소박한 편이다. 자진국사는 송광사 제5세 국사로서 1286(충렬왕 12)에 입적하였다. 따라서 이 부도의 조성시기는 그가 입적한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이러한 부도의 형식은 송광사 경내에 있는 2세 진각국사, 3세 청진국사, 8세 원감국사의 부도와 동일하다. 이 국사들의 부도는 형식이 거의 비슷하여 고려 후기의 부도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대원사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성모각에 모셔진 성모상의 모습이다. 대원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대원사로 들어오는 5키로미터 정도의 구불구불한 길은 어머니의 탯줄에 해당하고, 종각의 위치는 봉황이 알을 낳는 형국며, 대원사 터는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되는 형국이라고 한다.

 

중국 구화산은 김교각 스님으로 인해 4대 불교성지 중 한 곳이 되었다. 신라의 왕자였던 김교각 스님은 중국에서 실제로 한 세상을 살다 가신 존경받는 스님이다. 지장스님을 모신 金地藏殿의 건립은 역사적 성인의 깨달음을 기린다는 측면에서 지어진 전각이다.

김지장전에 모셔진 교각스님상.

황의영각은 황의정승의 진영을 모신 전각이다. 대원사와 선생의 인연은 1419년 남원에서 유배되어 근신하시며 경서와 시운을 탐구하던 중 보성 대원사를 참배한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황희정승의 넷째 아들인 직신공이 보성땅에 내려와 살면서 황희정승의 영당을 대원사에 건립하게 되었다.

 

유교를 받들고 불교가 배척받던 조선시대에 사찰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배경으로 경내에 황희영각을 건립하고 진영을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대에 여순사건으로 대원사가 불타면서 영각마저 소실되자 전라남도의 후원과 황씨 광주 보성 종친회의 협조로 2002년 황희영각을 건립하고 선생의 영정을 모사하여 다시 봉안하였다.

와불전 내부 전경.

()은 어떤 고통과 어려움도 해결해 준다는 보배 구슬, 즉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원사 와불전 기둥의 용두처럼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용이 물고 있는 물고기는 여의주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물고기는 여의(如意)의 상징물로도 인식되어 왔는데, 그것은 (yu)’의 발음이 (ru)와 비슷한 데 연유한다. 여기에 신령과 벽사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물고기 도상(圖像)은 최고의 길상과 상서의 상징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물고기를 문 용여의주를 문 용의 또 다른 표현이다.

묘길상전.

 보성 대원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일괄(보물 제1800) - 지장보살과 지옥에서 망자를 심판하는 시왕 및 지옥사자를 그린 불화로, 조선 후기 1766(영조 42)에 제작되었다. 지장보살도 1, 시왕도 10, 사자도 2점 등 총 13점이다. 현재 대원사 티벳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장보살도는 중앙의 수미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6보살, 사천왕 등이 협시한 간단한 구성을 보여준다. 지장보살을 둘러싼 6보살은 육도중생의 고뇌를 구원하는 관음보살, 용수보살, 다라니보살, 상비보살, 금강장보살, 지지보살 등을 표현한 것이다.

 

시왕도는 총 10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단에는 시왕의 심판 장면을 묘사하고, 하단에는 지옥 장면을 배치했다. 각 왕은 전각 안에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망자를 심판하는 모습인데, 주위에는 판관과 사자, 옥졸, 천녀 등이 협시하였다. 하단에는 지옥에서 벌을 받는 인물들의 형벌 장면과 함께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그려져 있다.

 

 

대원사 티벳박물관은 티벳의 정신문화와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와 영적인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박물관은 티벳사원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박물관 내부에는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이 15년 전부터 모은 1000점이 넘는 티벳 미술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히말라야의 불교왕국 티벳. 그들이 이룩한 빛나는 예술세계와 뛰어난 정신문화, 그리고 죽음의 과학을 한국의 작은 티벳이라 할 수 있는 티벳박물관에서 체험할 수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전시장과 티베트불교 지도자인 달라이라마 기념실이 있다.

 

특히 티베트 신탁승 쿠텐라가 전해준 4과의 가섭불 사리가 48과로 증식되어 계속 자라나고 있는 신비한 모습을 참배할 수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석가모니불의 후손들이 만든 불상을 모신 법당이 있다. 천수관음상과 고행상 등도 있다.

 

 위에 기술한 내용 중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관광공사-대한민국 구석구석' 문화재청, 그리고 Daum에서 배포한 자료 등의 내용 일부를 참고하여 작성한 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사진 및 글 : 서백(徐白) 김춘식(金春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