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160 - 미래세에 용화세상이 될 도량, 통영 미륵산 용화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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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의 사찰이야기160 - 미래세에 용화세상이 될 도량, 통영 미륵산 용화사

徐白(서백) 2016. 12. 23. 17:53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미륵산은 예로부터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의 상주처로 믿어져 왔던 곳이다. 언젠가 민중들의 염원이 이루어질 세상, 그 불국토는 바로 용화세상(龍華世上)이다. 그래서 용화사는 도솔천에 머물고 있는 미륵불이 하생하여 용화법회로 중생을 제도하는 상주처라고 할 수 있다.

 

용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632~647)에 은점(恩霑) 스님이 정수사(淨水寺)로 창건하였다. 그 뒤 고려 원종 원년(1260)에 큰 비가 내려서 산사태가 나자 전체 가람이 쓸려 무너진 것을 1263년 자윤(自允), 성화(性和) 스님이 자리를 옮겨 지으면서 천택사(天澤寺)로 사찰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7(광해군 9) 통제사 윤천(尹天)의 주선으로 군막사(軍幕寺)의 성격을 띤 사찰로 중건하였다. 조선 인조(仁祖) 6(1628)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벽담선사(碧潭禪師)가 현재의 용화사 자리에 새로 중창하고 다시 용화사로 개칭하였다. 지금의 보광전(普光殿) 기둥은 그 때 옮겨온 것이라 한다. 현재 삼존불을 모신 보광전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미륵불을 모신 용화전(龍華殿), 명부전, 탐진당, 적묵당, 칠성전, 해월루(海月樓) 등의 당우들이 있다.

 

그런데, 벽담 스님이 절 이름을 고친 데에는 그만한 사유가 있었다. 즉 화재로 말미암아 잿더미가 된 뒤 절을 중창하기 위해 미륵산 제일봉 아래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를 미륵존불께 기도를 드렸으며, 기도를 회향하던 날 밤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나는 당래교주미륵불(當來敎主彌勒佛)이니라. 이 산은 미래세에 용화회상(龍華會上)이 될 도량이니 여기에 가람을 짓고 용화사라 하면 만세(萬世)에 길이 유전(遺傳)하리라."라고 했다. 그래서 새로 터를 잡아 절을 짓고 절 이름을 용화사라 하였다 한다.

 

용화사를 다녀온 후 바로 포스팅을 하지 못해 여러 장의 사진이 사라지고 말았다. 해월루와 일주문을 상징하는 돌기둥, 그리고  불사리사사자법륜탑, 효봉스님 사리탑이 없. 불사리사사자법륜탑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절 경내로 들어가는 동선은 해월루 옆으로 들어갈 수 있게 우각진입(隅閣進入) 방식을 택했는데, 일주문을 대신한 좌우측 돌기둥에는 "彌勒山龍華寺, 離眞俗取中道(미륵산용화사, 리진속취중도"란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위 사진은 해월루의 뒤쪽, 즉 경내 쪽에 걸려 있는 "彌勒山龍華寺" 편액이다.

 

적묵당 앞에서 본 쇼카 양식의 원주석탑인 불사리사사자법륜탑과 해월루.

 

불사리사사자법륜탑의 기단부 모습.

 

탐진당 건물.

 

적묵당 건물.

 

목조건물을 지을 때 기단은 지면으로부터 건물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 지면의 습기를 피할 수 있고 햇빛을 실내로 충분히 받아들여 밝게 생활할 수 있다.

 

또한 기단의 높이는 건물의 위계성을 부여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궁궐에서는 왕이 국정을 수행하는 편전(근정전)이 다른 건물에 비해 기단이 높다. 옛날 양반집도 안채와 사랑채는 기단이 높고 행랑채는 낮다. 사찰에서도 부처님이 계시는 주불전은 기단이 높은 반면 다른 전각들은 낮게 지어진다.

 

용화사에서도 기단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위계성을 부여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부처님을 모신 보광전을 가장 높은 기단으로 축조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적묵당 건물이 두벌대 기단이고, 종무소가 있는 탐진당 건물은 가장 낮은 외벌대 기단 위에 지어져 있다.

 

보광전은 "부처님의 밝은 진리를 세상에 널리 비춘다"는 의미로 아미타삼존불(석가삼존상?)을 모셔놓은 용화사의 주법당이다.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다포형식의 건물이다. 초석은 자연석 덤벙주초를 사용하였고, 기둥은 배흘림이 약하고 귀솟음도 약하다. 어칸은 협칸보다 넓어서 어칸 위에는 공포(空包)2, 협칸에는 1구가 배치되었다.

 

보광전 편액.

 

불단 위에는 아미타삼존상(좌우협시는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의 수인과 협시보살을 볼 때 석가삼존상인지? 아미타삼존상인지? 구별이 곤란하다. 하지만 후불탱화를 자세히 보면, 본존불의 손 모양이 하품중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한 것이.

 

 

명부전 편액은 불기 29 ? 4년에 성파 하동주(1865∼1943년) 선생이 쓴 것이다.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좌우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과 시왕들의 모습.

 

영각 편액.

 

영각에 모셔진 효봉선사의 진영이다. 또한 이 영각을 효봉영각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미륵도와 미륵산 그리고 용화사란 절 이름은 모두 미륵부처님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용화사의 주불전은 당연히 용화전(혹은 미륵전)이어야 하지만, 사찰명과는 다르게 주불전은 보광전이며, 용화전은 보광전 서쪽에 위치한 부속전각으로 지어져 있다.

  

성파 하동주가 쓴 용화전 편액.

 

용화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벽담선사가 절을 짓고 꿈에서 보았던 흰 미륵부처님 존상을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육각정은 범종이 걸려 있는 범종각이다.

 

성파 하동주의 필적인 종루 편액.

 

 

 

 

용화사는 보광전, 용화전, 적묵당, 해월루, 탐진당, 칠성전, 명부전, 요사 2동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38호로 지정된 용화사 석조관음보살좌상80년 전 함양 영은사(靈隱寺)에서 옮겨온 것으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명부전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4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는 불사리사사자법륜탑, 효봉스님 사리탑이 있다. 불사리사사자법륜탑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뒤집어 보면, 심심치 않게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자처하며, 민초들을 울리고 간 사이비 교주들도 여러 명있다. 그 예로 후삼국의 궁예와 견훤이 대표적이고, 고려 우왕 때의 이금(伊金)과 조선 숙종 때의 승려 여환(呂還), 그리고 근세에 와서는 증산교 강일순, 영생교 조희성 등이 스스로 미륵불이라고 자처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민중들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고 간 사이비 교주들이었다.[포토, 글 정리 : 서백 김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