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157 - 하늘이 감춘 땅, 하늘 아래 첫 암자인 묘향대(암) 본문
며칠 전부터 부산불교방송산악회장의 끈질긴 권유도 있었지만, 지난 주말(6월 25일∼26일)을 어떻게 보낼지 무척 망설였다. 그러다 지나친 거절도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산행에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6월 25일 밤 11시 30분에 동구 범일동에서 출발, 다음날 새벽 3시에 지리산 성삼재에 도착하였다.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산행준비를 하여 새벽 4시부터 산행은 시작되었다.
수년만에 다시 찾은 성삼재는 변함이 없는데, 나의 몸둥이와 체력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성삼재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해발 1,507미터의 노고단을 거쳐 임걸령 샘터, 노루목, 묘향대, 뱀사골 실비단폭포(또는 이끼폭포), 제승교를 지나 남원시 반선이 산행 종점이었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하였지만 체력은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도 꼭 가보아야 할 묘향대가 있기에 산행은 멈출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묘향대 도착은 오전 9시 30분이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5시간 30분이 걸렸다. 흔히 하늘이 감춘 땅, 하늘 아래 첫 암자라고 하는 묘향대(묘향암)는 지리산이 숨겨놓은 암자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로, 해발 1,500미터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화엄사의 말사이다. 찾아가는 길은 분명치 않았다. 오지 중의 오지인 해발 1,500미터에 자리한 묘향대는 설악산 봉정암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묘향대에서 내려오는 뱀사골 골짜기 일대는 빨치산이 활동했을 정도로 험지였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선승들은 일생에 꼭 한 번 가볼 최고의 수행처로, 북으로는 묘향산 법왕대를, 남으로는 지리산 묘향대를 꼽았다고 한다. 묘향(妙香)은 『아함경』에 나오는 불교 용어로 기이한 향기를 말한다. 묘향에는 다문향, 계향, 시향이 있다. 이 향은 바람을 거슬러 냄새를 풍긴다고 한다. 자신을 불태워 세상을 정화하는 보살의 정신, 부처님의 바른 향기(진리, 가르침)를 전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리산 상무주암은 해발 1,100미터에, 설악산 봉정암은 해발 1,244미터에, 지리산 법계사는 해발 1,45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힘든 산행이었지만,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의미있는 산행은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장장 13시간 30분을 걷고 걸으면서 체력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기회가 되었다.
노고할매상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아침 햇살이 나무들의 후광이 되어 비춰지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능선에서 보이는 풍경은 온통 구름으로 채워진 바다이다. 저 구름 어딘가에는 전설 속의 암자.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묘향대, 아니 하늘도 감춘 땅에 묘향대가 분명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새들만 겨우 다녔을 오솔길은 자칫 한눈 팔아 헛디디면 금방 천길 아래로 고꾸라질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걷는 동안 긴장감으로 몸은 땀범벅이 된다. 긴장하며 산길을 가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무서운 정적만이 흐른다.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까마귀 울음소리. 그러곤 다시 침묵... 바람마저 숨을 죽인다. 이 광대한 원시림 속에 길은 점점 미궁이다. 희미한 오솔길마저 풍도목이 가려 버렸다. 두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길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회색 바위와 거무튀튀한 고목에 핀 푸른 이끼들, 덩굴로 뒤섞인 원시림엔 태초의 괴기함마저 서렸다.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이 고립무원의 산길을 만약 홀로 걷는다면, 분명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길이었다. 오지 중 오지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토록 외진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드디어 묘향대가 숙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살짝 얼굴을 내밀고 나그네를 반긴다.
이 돌계단을 올라서면 드디어 묘향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지리산에 있는 한국 불교의 마지막 전설로 불리는 암자로, 반야봉의 정수리에 자리 잡고 있는 묘향대이다. 남한 사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는 반야봉(해발 1,732m) 정상에서 서쪽 사면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았고 또한 반야봉도 찾아왔지만, 극히 일부의 지리산 사람들을 빼놓고는 묘향대를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묘향대까지 가려면 5~6시간 동안 열심히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묘향대 앞에서 바라보면, 토끼봉부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동물들도 길을 잃고 헤메는 고립무원의 참선도량 묘향대는 비교적 넉넉한 마당을 품고 있다. 지리산 해발1,500m 높이에서 그림같은 이런 마당은 묘향대가 유일할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지난 1980년대 초반 겨울 어느 날 묘향대에 한 스님이 계셨다. 스님은 늦깍이 출가를 한 관계로 속가에 자식이 있었다. 이 아들은 대학을 합격하고 그 기쁨을 아버지에게 전하기 위해 묘향대를 찾아오다 반야봉 근처에서 안타깝게도 조난당해 숨졌다고 한다. 묘향대가 간직한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이다.
묘향대는 반야봉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해 쉽게 찾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곳은 수백년 동안 토굴로 이어져 왔다. 시작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른다. 다만 조선시대에도 묘향대에 관한 얘기가 회자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한것은 70년대 초반이다.
묘향대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의 발길이 가장 먼 곳이다. 하지만 극락정토를 염원하는 수행자의 가슴에는 이상향의 공간이다. 마치 극락으로 가는 계단의 첫 디딤돌과도 같은 곳, 그곳이 바로 묘향대이다.
묘향대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좌상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측 벽면에 모셔진 칠성탱이다. 칠성여래의 아래쪽에는 별도의 구획을 지어 자미대제를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자미대제는 북극성이다. 북극성을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 도교에서는 자미대제, 인도의 북두만다라에서는 묘견보살이라고 불렀다. 북두칠성의 호위를 받는 북극성은 또 천추성(天樞星)이라 불린다. 이 천추성을 별나라의 임금, 천황대제 또는 구천상제라고도 한다.
칠성탱 좌측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남극노인성의 확대된 모습이다. 남극 부근의 하늘에 있는 별로, 2월 무렵에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 잠시 보인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 별이 수명(壽命)을 맡아본다고 하여 이를 보면 오래 산다고 믿었다.
관세음보살의 우측 벽면에 모셔진 신중탱으로, 위태천을 중심으로 대범천왕과 제석천왕, 그리고 사천왕과 일직사자, 월직사자 등이 협시하고 있는 구도의 신중탱화이다.
영가단의 모습
두 벌의 발우를 보관한 모습
산행하면서 동고동락한 일행들과 묘향대 참배기념 인증샷~!!! 그리고 우리 일행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신 호림 스님은 2004년 묘향대에 왔다. 올해로 꼭 12년째다. 이곳에 지금의 암자가 들어선 지는 1970년대 중반 도장 스님 때였다. 호림 스님께서 묘향대에 대해 한 말씀 일러주신다.
"예전부터 이곳은 수행처로 알려졌던 모양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고승들이 오고가며 이곳에서 수행을 했겠지요. 정확한 건 150년 전에 개운 스님이 이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스님이 지은 <능엄경> 부록(주석서)에 보면 묘향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어요."
악어의 모습을 하고 넘어져 있는 고사된 나무
심산유곡 뱀사골에 위치하고 있는 실비단폭포(일명 이끼폭포)의 모습
참고자료 :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암자 기행, 지리산 암자기행, 한계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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