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152 - 달이 머문 절이란 뜻을 가진 의성 주월사(住月寺)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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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의 사찰이야기152 - 달이 머문 절이란 뜻을 가진 의성 주월사(住月寺)

徐白(서백) 2016. 4. 23. 10:11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에 있는 주월사(住月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고운사의 말사로, 통일 신라 신문왕 때 창건(법흥왕 2년에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음) 되어서 조선 초기 사찰 정리시기에 폐사되었다가 그 뒤 1565(명종 20)1617(광해군 9)에 용화전을 중수하였고, 대웅전은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1692년에 중건하였다. 1819(순조 19)에 대웅전을, 1822(순조 22)에 용화전을 다시 지었으며, 1997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절골'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많이 있다. 의성군 사곡면(舍谷面)의 이름도 처음에는 '절골'이었다가 한자로 적으면서 '寺谷'이 되고, 뒷날 불교가 세력을 잃는 과정에서 '舍谷'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말이다.

 

주월사 뒤편의 산을 마을사람은 불출산(佛出山)이라 부른다. 부처님이 나온 산이라는 뜻이다. 이 산 정상 부분에는 지금도 물이 고인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곳을 천지(天池)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때 현재의 주월사 위쪽 불출산(佛出山)에 천지(天池)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서 세 분의 부처가 솟아났으며, 맨 먼저 솟은 미륵부처님은 이곳에 절을 지어 봉안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솟은 부처님은 각각 고운사와 영천 은해사에 모시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주변의 목재를 베어 절을 지을 준비를 해 두었는데, 어느 날 하룻밤 사이에 나무들이 모두 사라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절은 지어야 하므로 부지런히 목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지금의 절터에서 잃어버린 목재를 발견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목재들이 갑자기 날개가 달려 날아왔을 리도 없고, 도적들의 짓이라면 아예 아주 먼 곳까지 가져가야 마땅한데, 산꼭대기보다 조금 아래인 이곳에 나무들이 고이 남아 있다는 것은 뭔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일이 아닌가.

 

그때, 사람들은 수십 마리의 토끼들이 목재 주변에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토끼들이 밤을 새워 나무들을 이리로 옮긴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깨달았다. 최고의 명당인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라 여기고 의상대사가 주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주월사 경내에는 옛날에 돌로 만든 토끼상이 전하고 있다.

 

절이 완공되고 나자 기적이 또 일어났다. 밤이 왔는데, 하늘의 달이 움직이지 않고 몇 시간을 멈춰 있다가 움직였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몇 시간이나 달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이 머문() ()이라는 뜻의 주월사(住月寺)로 하였다고 한다.

 

비록 근래에 만들어진 석등이지만, 일반 석등의 모습을 벗어난 형태이다. 거북 모양의 귀부 위에 쌍용이 서로 몸통을 감고 앙련과 화사석을 받들고 있고, 화사석 위의 옥개석도 특이한 모양를 한 석등이다.

 

정면에서 본 주월사 경내의 모습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뒤에 보이는 건물은 미륵전이고, 좌우측의 건물은 요사와 종무소로 쓰이는 당우이며, 사진에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우측 끝자락에는 삼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식 맞배 지붕의 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석조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는 삼세불도가 봉안되어 있는데, 주월사 삼세불도는 비단에 채색한 것으로, 본존은 석가모니불이고, 좌협시로는 약사유리광여래불과 문수보살을 배치하였고, 그 위로는 미륵보살, 관세음보살, 준제보살을 배치하였다. 우협시는 아미타불과 보현보살을 배치하고, 그 위로는 제화갈라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을 배치하였고, 입상의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는 좌우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구도이다.

 

대웅전 앞에 4마리 해태가 바치고 있는 5층 석탑이다.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이 탑은 최근에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은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신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그리고 "殿"이란 편액을 쓸 경우에는 대개 내부에 불보살이 봉안된 경우인데, 이곳 주월사는 삼성각 대신 삼성전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하긴 중앙에 모셔진 분이 칠성여래이기 때문에 "殿"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 같다.

 

삼성전에 주존으로 모셔진 치성광여래탱의 모습.

 

치성광여래의 좌측에 모셔진 산신탱.

 

치성광여래의 우측에 모셔진 독성탱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순차적인 기준을 삼성각에 적용해 보면 삼성각이란 칠성(七星)여래, 독성(獨聖)(나한), 산신(山神)을 함께 모신 전각을 말한다. 세분 다 불교 고유신앙이라기 보다는 도교나 토착신앙이 불교에 유입된 경우이다. 그래도 칠성여래는 부처님이고 독성은 깨달은 분인 아라한이지만, 산신은 엄격히 말하면 아직 중생이다. 따라서 칠성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 독성을, 우측에 산신을 모신다. 그런데 주월사 삼성전에서는 독성과 산신의 위치를 바꿔 모셔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요사채에 걸려 있는 "주월암(住月庵)" 편액.

 

우리 속담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라는 말이 있다. 바로 이 나무가 주월사 요사채 앞에 있는 모과나무이다. 모과나무는 우리를 세 번 놀라게 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못생겨서 놀라고, 맛이 없어서 놀라고, 그러나 향이 넘 좋아 또 한 번 놀란. 모과나무 껍질은 예비군복처럼 생긴 것이 특징이다. 모과는 나무에 달리는 참외같다는 말인 목과(木瓜=木果)에서 비롯된 말이라 한다.

 

열매도 울퉁불퉁 단단하고 맛이 없어서 그냥 먹지 못하지만 목에 관련된 증상에 약효가 좋아서 모과차로 많이 마신다. 나무는 목질이 치밀하고 단단해 옛날에 화초장(花草欌) 같은 최고급 가구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놀부가 부자가 된 흥부네 집에서 빼앗아 갔던 바로 그 가구가 화초장이란 이야기도 있다.

 

대웅전 우측에 위치한 요사채의 모습.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미래 세상에 출현하실 미륵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다. 미륵부처님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후 567천만년 뒤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 84천세가 될 때에 사바세계에 내려오셔서, 화림원(花林園)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시고, 3회의 설법(용화삼회)를 열어 아직도 제도하지 못한 272억명을 교화한 후 만 6년만에 열반에 든다고 한다.

 

불교에서 미륵하생을 믿듯이 기독교인들도 예수재림을 믿는다. 예수재림이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재림시의 모습은 너무 우리들을 두렵게 한다. 미륵부처님은 교화하려 내려오지만, 예수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심판을 하려 온다고 한다. 자기를 믿는 사람만 구원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너무 옹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용화전에는 창건 당시에 조성되었다는 석조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난 뒤, 미륵부처님의 원력으로 인해 사방 10리 밖에서 양반들이 몸종을 데리고 말을 타고 가면 말에서 내려 걸어가도록 했다. 이에 화가 난 양반들이 미륵부처님의 앞을 정으로 찍어, 지금도 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또한 예로부터 미륵부처님께 간절히 소원을 빌면 꼭 들어준다고 하여 지금도 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기도한다.

 

오층석탑 사이로 보이는 대웅전의 모습.

 

주월사에는 원래 절을 지으려는 위치에서 조금 아래쪽으로 토끼들이 밤을 새워 나무들을 옮겨놓아서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현 위치에 절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라 여기고 주월사를 창건하였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실제로 지금도 주월사 경내에는 옛날에 돌로 만든 토끼상이 전하고 있다.

 

사단법인 미소원 문화탐방 회원들의 단체 사진.

 

(참고자료 출처 : 신증동국여지승람, 의성군지, 오마이뉴스,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