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143 - 원효대사의 이적으로 유명한 불광산 척판암 본문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고,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불광산(佛光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암자이다. 장안읍지에 의하면, 척판암은 678년(신라 문무왕 13)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담운사(談雲寺)라고 하였다. 이때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통일과업 달성을 위해 힘쓰고 있을 시기이다.
그 뒤 원효 스님은 중국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雲際寺, 척판암 안내문에는 泰和寺로 기록)에서 공부하는 1,000명의 승려가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운명에 놓인 것을 알고, ‘曉擲盤而救衆(효척반이구중)’이라고 쓴 큰 판자를 하늘로 날려보내어 그 절 상공에 뜨게 하였는데, 이것을 보고 놀란 대중이 일제히 법당에서 나와 쳐다보는 순간에 뒷산이 무너져서 절이 매몰되었다.
1천여명의 대중을 구제한 이른바 척반구중(擲盤救衆) 행을 통해 스님의 도력을 중국 땅에 과시한 큰 사건이 되었으며, 이를 이름하여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球衆)’이라고 하여 세상에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있은 후에 1,000명의 승려들이 우리나라로 원효를 찾아와서 가르침을 받고 모두 도(道)를 깨쳤다고 한다. 이 때의 이적을 기리기 위해 절 이름을 척판암(擲板庵)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 뒤 이 절은 원효대사의 이적지로 중요시되어 많은 참선수행 승려들이 머물렀다. 그러나 중건 및 중수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1938년에 경허 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당 옆으로는 1972년에 의운 스님이 세운 높이 3m의 삼층석탑이 있다. 탑 안에는 석가모니불의 사리 5과가 봉안되어 있다.
이 사리는 일본에서 고물상을 경영하는 한 신도가 고철불(古鐵佛)의 복장(腹藏)에서 53과의 사리를 발견하여 이를 제주도의 관음사(觀音寺)에 봉납하였다. 이것을 덕명 스님이 관음사 주지 향운 스님으로부터 얻어와 탑을 건립하고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탑의 비문은 운허가 찬하고 무불이 썼다. 얼마 전까지 장안사의 부속암자였으나 현재는 독립사찰이다.
그리고 천성산 이름과 원효 스님의 관련 내용이 기록된 가장 오랜 문헌은『송고승전』이다. 중국 송나라의 승려 찬녕(贊寧·919~1002)이 988년에 찬술한 송고승전의 <당신라국황룡사원효전(唐新羅國元曉傳)>에 원효가 행한 이적(異蹟)들이 간략히 언급된다. 그 가운데 ‘혹은 소반을 던져 많은 사람을 구했다(或擲盤而求衆, 혹척반이구중)’는 내용이 나온다. 어디서 어떤 사람을 구했는지 그 구체적 내용은 없다.
이 문을 들어서면 바로 척판암의 주불전 건물이 앞을 가로 막고 서 있다.
佛光山擲板庵(불광산척판암) 편액
척판암 주불전(사진-1)
척판암 주불전(사진-2)
주불전에 걸려 있는 척판암(擲板庵) 편액
주불전의 본존으로 봉안된 불상인 석조여래좌상은 작은 규모의 불상으로, 전형적인 조선후기 조각의 표현이 엿보인다. 양손은 가부좌한 무릎 위에 올려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어깨와 무릎이 좁으며, 고개가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입술 꼬리가 살짝 올라가 미소 지은 얼굴은 온화한 인상을 준다.
주불전에 모셔진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신중탱의 모습
척판암 주불전에 모셔진 칠성탱으로, 칠성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측에는 칠여래와 칠원성군이 시립하고 있고, 협시보살은 일광과 월광보살이 해와 달을 각각 들고 있는 모습이며, 향우측 가장자리 아래에는 남극노인성이 표현되어 있는 구도이다.
주불전에 함께 봉안 되어 있는 창건주 원효대사의 진영
전각 앞쪽 비탈에는 수 백년된 느티나무가 척판암의 수호신처럼 지키고 서 있고, 암자는 큰 바위 위에 턱 걸치고 앉아 있는 듯하다. 느티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처진다 하여 '규목'이라 부르며, 곁가지가 처지는 것을 상징해 '거류' 또는 '거수'라고도 한다. 산기슭이나 골짜기, 마을 부근의 흙이 깊고 그늘진 땅에서 잘 자란다.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비늘처럼 껍질이 떨어진다.
용왕각의 모습
용왕각에 봉안되어 있는 용왕
척판암의 극락전(사진-1)
척판암의 극락전(사진-2)
척판암의 극락전(사진-3)
1972년에 건립된 삼층석탑에는 석가모니불의 사리 5과가 봉안되어 있다. 이 사리는 일본에서 고물상을 경영하는 한 신도가 고철불(古鐵佛) 복장에서 53과의 사리를 발견하여 이를 제주도의 관음사에 기증하였는데, 이 사리 중에 5과를 얻어와 석탑을 건립하고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포대화상은 중국 스님이였는데, 몸집이 뚱뚱하고 이마는 찡그리고, 배는 늘어진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말이 일정치 않고, 아무데서나 눕고 자고 하였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가지고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하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의 길흉 화복이나, 날씨 등을 미리 말하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 한다. 916년(양 정명 2) 3월에 명주(明州) 악림사 동쪽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 게송을 남기고 죽었다.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산신각(사진-1)
산신각(사진-2)
급격히 경사진 비탈에 지지대를 받치고 지어진 산신각은 공중에 떠 있는 위태로운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산신을 친견할 수 있지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위 글은 한국의 사찰, 월간 山, 동국역경원, 부울경뉴스, 그리고 Daum에서 배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한 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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