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신라시대의 탑 가운데 유일하게 상륜부가 남아 있는 송림사 오층전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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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탑 가운데 유일하게 상륜부가 남아 있는 송림사 오층전탑

徐白(서백) 2013. 11. 22. 23:28

 

원래 탑()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석가모니가 열반(涅槃)에 들고 그 시신을 다비(茶毘)해서 나온 사리(舍利)에서 비롯된다. 사리를 모시려니 뭔가 새로운 조형물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탑은 탑파(塔婆)의 약칭으로 인도 고대어(梵語)로는 스투파(Stupa)라고 한다. 스투파는 신골(身骨)을 봉안하여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분묘를 말한다. 그래서 탑 속에는 원래 사리를 봉안하는 것이 원칙인데, 석가모니의 사리가 한정되어 있음으로 인해 이를 대신해서 불상(佛像)이나 불경(佛經)을 넣어서 부처님과는 또 다른 하나의 경배(敬拜)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보물 제189호 송림사 오층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이다대웅전 남쪽 평지에 높이 16.13m, 기단폭 7.3m로 지대석 위에 토축의 얕은 단층 기단 위에 세워졌다. 신라시대의 탑 가운데 유일하게 금동상륜부(金銅相輪部)가 남아 있다.

 

기단의 각 면석에는 우주(隅柱)5개의 탱주(撑柱)를 조각하고, 그 위로 갑석을 덮은 후 중앙에 1단의 화강암으로 탑신받침을 마련했는데 이것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수법과 비슷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를 모두 전(, 벽돌)으로 축조하였으며, 탑신부 곳곳에 문양전(紋樣塼)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초층 탑신은 비교적 높으나 2층 이상의 탑신의 체감율은 완만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옥개석는 1층부터 9, 7, 7, 6, 4단이며, 낙수면의 층단수는 1층부터 11, 9, 8, 7, 5단이다.

 

2층 옥개에서는 거북형 석함 속에서 사리구가 발견되었는데, 금동 전각형 사리기 안에 안치된 녹색 유리제 사리병을 비롯하여 유리제 잔, 수지형(樹枝形) 금동 장식, 옥류(玉類) 등이 있었으며, 3층 옥개에는 나무 뚜껑을 덮었던 석궤가 있었으나 속에는 부식된 경전의 흔적만 있었다고 한다.

 

 

 

상륜부에는 5층 옥개 위에 노반을 만들고 노반의 네 귀에 풍경이 달린 동판을 얹어 갑석을 대신하였다. 찰주는 목재이며 그 위에 동판을 씌운 다음 복발, 앙화, 보륜(보개와 수연은 없음), 용차, 보주를 두었다. 이는 1959년에 해체하여 복원작업을 하면서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다.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통일신라시대 금동 상륜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1959년 해체수리를 할 때 쏟아져 나온 사리 장엄구와 함께 여러가지 유물들은 양과 질 모두를 만족시켰다. 그 중에서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사리 장엄구(보물 제325)는 대구박물관의 입장권 전면에 새겨지기도 했다. 또 미국 매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대여되어 한국의 문화와 미술품을 알리는 메신저로서 유물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또한 이 전탑에는 구부러진 오층전탑에 관한 전설이 전하여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탑신 동륜과 속에 든 사리 등을 약탈하려고 들이닥쳤다. 스님들이 부를 보니 왜인은 '()'자를 무서워 할 것으로 나와, 왜적들이 탑 윗부분 상륜부에 밧줄을 걸어 당기는 순간, "송림사!" 하고 소리치자, 청천 백일에 뇌성이 일고 탑속에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하여 왜적들은 혼비백산 도주하였는데, 이 때문에 상륜부가 구부러졌다고 한다.

 

 

석탑 상륜부의 명칭

 

1) 승로반(承露盤)

()받들 승 혹은 이을 승으로 공경하여 모시다, 계승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슬이란 의미이지만 적시다, 젖다, 은혜를 베풀다의 뜻도 된다. ()쟁반 반으로 밑받침 혹은 물건을 얹는 대()’의 뜻이 있다. 그래서 승로반은혜를 베푼이(부처님)를 공경하여 모시는 대혹은 밑받침이라는 뜻이다. 즉 석탑의 상륜부에 첫 상징물인 승로반은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을 공경하여 높여 모신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2) 복발(覆鉢)

복발은 여래 10호 중에 응공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천상이나 인간 세상에서 능히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을 상징한다.

 

3) 앙화(仰花)

연꽃을 나타내며,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연화대좌를 상징한다. 연꽃은 원래 환생의 의미를 나타냄으로 중생에서 부처로 새로 태어나신 분이기 때문에 연꽃위에 앉으신다.

 

4) 보륜(寶輪)

부처님의 진리가 수레바퀴 돌 듯 멈추지 않고 영원함을 나타내는 진리의 법신인 법륜이 연화대좌 위에 위치하여 부처님의 육신을 대신하여 보륜으로 표현한 것이다.

 

5) 보개(寶蓋)

보개는 천개(天蓋)라고도 하는데, 존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일산(日傘)이다. 즉 보개는 부처님의 법신을 상징하는 보륜을 덮고 있다.

 

6) 수연(水煙)

수연은 물안개를 나타낸다. 신성한 곳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또한 용이 머물고 있는 곳은 항상 물의 기운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연 위에는 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용차(龍車)가 있다.

 

7) 용차(龍車)

부처님을 가장 가까이서 수호하는 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용차 밑에 수연, 즉 물안개가 있어 물 위의 힘찬 용이 부처님을 지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8) 보주(寶珠)

탑의 꼭대기를 장식하는 보배로운 구슬로, 보주는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을 말하며 깨달음의 완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9) 찰주

심주(心柱)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탑의 상륜부 중심 기둥이다. 불교의 정신적 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송림사 오층전탑은 1959년 보수를 위해 해체하면서 탑 안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보물 제325호)'는 2층 탑신 구형(龜形) 석함(현재 송림사에 보관) 속에서 발견되었다. 1층 탑신에서는 나무와 돌 그리고 동으로 만든 불상이 각각 2구씩 나왔고,

2층에서는 신라의 사리 장신구들이 나왔다.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든 섬세한 장식물들이 붙어있는 금동제 사리탑과 녹색 유리로 만든 목이 긴 사리병, 옥과 진주가 붙어있는 유리잔들이 채색된 거북 모양의 돌로 만든 함 안에 있었다. 3층에서는 나무 뚜껑이 덮혀있는 돌 상자 안에서 부식된 종이들이 발견되었으며, 5층 위에 있는 머리 장식부인 복발(엎어놓은 대접모양의 장식) 안에서는 상감청자로 만든 원형 합과 금동으로 만든 원륜 2개가 발견되었다.

그 중 상감청자원형합은 국화 꽃무늬와 덩굴무늬로 장식한 것으로, 유약 색깔과 문양으로 보아 12세기후반 상감청자의 전성기 때 작품으로 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 밖에도 구슬 281개, 은 고리(은환) 15개, 향목 7개와 보리수 열매로 보이는 열매가 1개가 발견되었다.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의 다양한 유물들이 하나의 탑 안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보수가 여러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층에서 발견된 거북 함 속의 금동 사리기와 유리 사리병은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유물로 사료로서 그 가치가 크다.(상륜부 사진, 사리장엄구 사진, 사리장엄구 설명 등의 출처는 문화재청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