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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81년 특별기획] 600년의 비전(秘傳), 국새(國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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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 : 2008년 3월 6일(목) 밤10:00∼11:00 (1TV/60분) ◆ 연출 : 김정중 ◆ 촬영 : 변행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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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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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공개 !! 중국/일본/대만의 국새와 미국/프랑스의 국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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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章문화권인 중국, 일본, 대만의 국새 3천년 전각(篆刻)의 역사를 지닌 중국(대만 포함)은 어떤 국새를 사용할까? 입헌군주제로 천황이 존재하는 일본은 국새를 사용할까?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새워지던 1949년 국새를 제작했다. 청동으로 만든 국새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지인>이라는 다소 긴 내용의 인문(印文)이 새겨져 있다. 중국의 국새는 1954년 제 1차 전국인민대표자 회의 이후 사용하지 않고 국가박물관에 1급 국가문물로 보관되어 있다. 대만의 경우는 말 그대로 옥으로 만든 옥새로 중화민국지새(中華民國之璽)가 쓰여져 있으며 총통부에서 보관한다. 일본은 막부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 유신으로 거치며 천황의 국새를 제작했다. 1874년 금으로 제작한 일본의 국새는 <대일본국새(大日本國璽)>와 <천황어새(天皇御璽)>의 2가지로 궁내청에서 보관하며 내각대신의 임명장과 훈장 등에 날인한다. 비인장 문화권인 서구 국가의 국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서구 국가 국새의 특색은 인장문화권인 아시아의 국가들처럼 글씨는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문장(紋章)이다 나라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미국은 국무성이 국새를 담당하는 부서로 유명한 대머리 독수리를 紋章을 사용한다.프랑스는 자유의 여신상 紋章으로 왁스를 녹여 그 위에 날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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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새제작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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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건국과 함께 첫 국새인 개국(開國) 국새가 제작되었다. 대전 국가기록원의 관인대장에 따르면 국새의 인문(印文)은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로 은으로 만들었다. 1963년 2번째 국새로 교체되기 전까지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분실상태로 인뉴(印紐)의 생김새는 알 수 없다. 2번째 국새는 1963년 제 3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쓰였다. 인뉴는 거북이, 인문은 한글 전서체 대/한/민/국이 새겨져 1998년까지 사용되었다. 순은으로 만들었으나 사방의 길이가 7cm에 불과하고 손잡이가 제후국의 상징인 거북이여서 한 국가의 위엄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국새였다. 인면이 닳아 새로운 국새로 교체되는 운명을 맞는다. 세 번째 국새는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아 새로이 제작되었다. 인뉴는 봉황으로 하고 한글 훈민정음체로 대/한/민/국을 새겼으며 사방의 길이도 10.1cm로 커졌다. KIST의 박사들이 참여해 첨단 과학을 동원한 금 합금 주물(鑄物)로 제작했으나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이 사용초기부터 지적되었다. 또한 인뉴가 봉황 두 마리가 마주보는 형상이어서 나라가 항상 시끄럽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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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제작의 비전 영새부(榮璽溥)와 古玉璽看繪鄭圖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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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제작의 秘傳이 담긴 책이 바로 고옥새간회정도이다. 이 책은 국새전각장인 민홍규의 스승인 석불(石佛) 정기호 선생이 직접 쓴 옛 국새제작에 대한 비서(秘書)이다. 정기호는 대한민국 개국 국새를 만든 이로 20세기 최고의 전각장인이었다. 이 책에는 인면이외에는 형태를 알 수 없던 대한민국 개국 국새의 인뉴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제작 후에 첫 시험날인(試印)된 인면이 남아있다. 자신의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이 책의 책갈피를 갈라보면 조선시대 국새 제작에 관한 은밀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국새는 특성상 제작의 비법을 함부로 알릴 수도 없었다. 국새제작의 비전(秘傳)은 영새부(榮璽簿)라 불리며 국새전각장인들에게 구전(口傳)으로 내려왔다. 영새부란 국새제작에 있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철학, 조각을 하는 도법(刀法), 인뉴의 조각원리, 합금의 원리 등이 담긴 총 10항목의 원리이다. 또한 금속합금 주물에 반드시 필요한 가마의 설계도면과 국새의 부속의장품에 대한 기록 등이 책갈피속에 숨겨져 그의 제자 민홍규에게 전해내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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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뉴(龜紐/거북이 손잡이)에서 용뉴(龍紐/용 손잡이)로 비극의 국새, 대한제국 국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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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에 국새는 바로 국가이자 임금이었다. 새로운 국왕의 즉위식은 바로 선왕이 쓰던 국새를 물려받는데서 시작했다. 불행히도 중국에 대해 사대의 관계에 있던 조선은 제후국을 상징하는 거북이를 국새의 손잡이로 사용해야 했다. 황제를 상징하는 용은 중국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대외적인 위상강화 외교를 펼치려 했다. 고종은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새로운 국새의 제작을 명했으며 이에 따라 제후국의 상징인 거북이 대신 황제의 상징인 용을 손잡이로 하는 국새를 만들었다. 이때 제작된 국새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대원수보(大元帥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2개) 등 6개의 국새와 내각총리대신장(內閣總理大臣章), 내각지인(內閣之印)2개 등 모두 8개의 국새를 제작해 사용한다. 하지만 이미 국운이 기울어져있던 터라 이들 국새는 을사늑약 이후 통감부가 탈취해 가 국권을 넘기는데 무단 사용되었다. 또한 한일합방조약 문서에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넘기는데 총리의 인장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망국의 운명이었지만 고종황제는 국권회복을 밀사를 파견하는 등 노력했으며 밀사에게 준 전권 위임장에 국새를 찍어 보내기도 하였다. 이들 국새들은 1910년 일제의 불법 강점 이후 이들 국새는 전리품으로 상납되어 일본으로 넘겨지는 운명을 맞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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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한국에만 전해 내려오는 국새제작의 비전(秘傳) 최초 공개!! 국새제작의 전과정 1년간 취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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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제작의 가장 큰 특색은 주물방식이라는 점이다. 옥을 깎아 만드는 것도 아니고 현대적 주물도 아니고 전통 거푸집 방식이라는 점이다. 전통거푸집 양식이란 바로 밀랍을 이용한 납형주조법(蠟形鑄造法)을 말한다. 납형주조법이란 1)꿀벌이 벌집을 만들 때 분비되는 물질인 밀랍으로 조각을 하고, 2)그 위에 흙을 입혀 거푸집을 만들고, 3)거푸집이 마른 후 가마에 구워 밀랍을 녹여낸 후 4) 거푸집안에 쇳물을 녹여 부어 넣어 조각을 만드는 방식으로 청동기 시대의 청동거울이나 통일신라시대 에밀레 종 등의 제작방식을 말한다. 납형주조법은 밀랍에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어 최고의 주물 방식으로 평가된다. 에밀레 종의 섬세한 비천상 조각 역시 밀랍에 조각했기에 가능했다. 납형주조법에 대한 설명은 이처럼 간단하지만 실제 제작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밀랍 거푸집을 가마에 넣어 구워야 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가마의 제작이 필수적이며, 가마에서 높은 온도에 견딜 수 있는 거푸집 흙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밀납주조 방식에 의해 제작되는 국새는 아시아의 대표적 인장문화국가인 중국, 일본의 경우 만들 수 없다. 秦, 漢시대 금속 주물 인장을 제작하던 중국은 명나라 시대를 거치며 깎기 쉬운 옥(玉)을 인장의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1949년에 제작된 중국의 개국 국새도 인문(印文)을 직접 주물하지 못하고 조각도로 깎아 제작할 정도였다. 중국에 비해 전각의 역사가 짧은 일본 역시 옥을 이용해 전각하는 수준으로 일본 최고의 전각가였던 고바야시 도완은 현대 기술로는 秦, 漢시대 수준의 인장을 만드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우리 나라는 최고 수준의 금속 주물 기술이 전수되고 있으며, 조선 왕조의 국새 제작 장인의 계보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금속 주물로 만드는 국새제작의 전통은 세계에서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가진 기술로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다 할 것이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국새제작의 전과정은 거푸집에 사용할 오합토(五合土)를 선별하는 수비(水飛) 작업과 밀랍에 조각되는 인뉴와 인면의 모습, 오합토를 이용한 전통 거푸집의 제작, 대왕가마의 제작, 5개의 가마를 이용한 가마 작업 등으로 조선 왕조 이후 600년동안 한번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장면이 생생히 카메라에 담긴 것으로 KIST의 최고과학자들도 재현하지 못했던 전통 과학, 예술의 우수성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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