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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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영원한 고향 평천리의 역사

徐白(서백) 2009. 9. 14. 23:15

  

 

평천리는 3개의 행정리로 나뉘어져 있으며,임진왜란 이후 거듭되는 가뭄으로 온 마을의 식수가 고갈 상태에 이르렀지만 들판 아무 곳에나 우물을 파면 샘물이 잘 나왔으므로 평천(平泉)이라 하였다.

 

영천댐을 만들 정도로 다량의 수량이 저 멀리 영덕군 지품면에서 발하여 흐르는 물이 자호천으로 흘러 많은 물이 퇴적하여 비옥한 평야를 형성한 그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써 풍부한 농산물, 편리한 교통으로, 각종 물품의 교역지였고 모든 물자가 풍부한 곳이다. 지금도 그대로 존속되기에 인심이 매우 후하고 인정미가 넘치는 마을이다. 비옥한 농지이기에 일찍부터 사과 재배가 성했다. 1920년대에 이미 일인(日人)들이 침입하여 사과생산을 했으며 또 벼 후기작으로 도내에서도 가장 일찍 딸기 재배를 하였다. 1970년대에 이미 일본과 계약재배하여 딸기를 일본으로 수출한 사실이 있을 정도로 농업분야는 예나 지금이나 앞선 마을이다.

 

평천리의 동쪽에 있는 부연리(浮硏里)마을은 한가운데가 아주 낮아서 마치 연꽃이 떠있는 형상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북서쪽에 있는 임천(林泉)은 예전에 횡기장터인데 주막이 많았고, 숲과 샘이 많아 그런 지명이 생겼다. 그리고 행화촌(杏花村)은 옛날 이 마을에 살구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었으므로 그런 지명이 붙게 되었다. 용수가 풍부하여 농산물이 매우 잘 되는 곳이기도 하다. 1914년 일제가 강침한 후 우리의 정신과 풍습 및 전통을 말살시키려고 지명도 임의로 변경시키고 또 행정구역도 통폐합했던 것이다. 이 마을도 예외가 될 수 없어 여러 마을과 합하여 행정리 명칭이 평천리로 된 것이다. (자료제공 : 임고면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