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김춘식)의 사찰이야기192 - 고립무원의 오봉산 주사암을 가다. 본문
경주시 서면 오봉산(五峰山)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주사암(朱砂庵)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절 뒤쪽의 오봉산(해발 685m) 정상은 그 자체가 바위이다. 바위의 형상은 투구 모양인데, 주사암은 그 정상에서 약 30m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주사암이 위치한 곳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투구의 안쪽에 들어가 있는 형국이며, 절 입구에는 양쪽에 석문(石門)이 버티고 있어서 일주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경내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석문을 경계로 성(聖)과 속(俗)의 세계로 구분되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사암(朱砂庵)에 대한 내력과 설화가 있다. “신라시대에 한 도인이 이곳에서 신중삼매(神衆三昧)에 들어 스스로 말하기를 ‘적어도 궁녀가 아니면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신(神)의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궁녀를 훔쳐 저녁에 데려왔다가 새벽에는 돌려보내기를 반복하였다. 궁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런 사실을 임금에게 알렸다. 임금은 궁녀에게 이르기를 그곳에 가서 자는 곳에 주사(朱砂)로 표시하게 하고 군사를 풀어 그곳을 찾게 하였다.
오랜 수색 끝에 이곳에 도착하여 보니 붉은 주사(朱砂)의 흔적이 바위에 표시되어 있고 늙은 도인이 바위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임금이 그의 요괴하고 미혹한 행위를 미워하여 용맹한 장졸 수 천명을 보내 죽이고자 하였으나, 그 승려가 마음을 고요히 하고 눈을 감은 채 한번 주문(呪文)을 외우니 수만의 신중(神衆)이 산과 골에 늘어섰으므로 군사들이 두려워 물러갔다. 임금은 그가 이인(異人)임을 알고 궁궐 안에 맞아들여 국사(國師)로 삼았다. 이후로 절 이름을 주사암이라고 하였다.”
대웅전 불단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그 바깥으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다. 관음과 지장보살만 계신다면 본존불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이라도 아미타불로 보아야 하겠지만, 그 바깥쪽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고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를 걸었으며 '대웅전'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니 석가모니불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朱砂菴(주사암)과 영산전(靈山殿)’ 편액이 걸린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의 뒤쪽 바위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이 법당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 법당 안에 신장(神將)이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신도들이 기도를 하면 이 신장으로부터 받는 어떤 영험이 있을 것이라고 전한다. 수천 수만 년 전에 도를 닦은 정신세계의 도인이 육체를 벗은 다음에 이 터에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신중(神衆)은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이다. 이 신중들이 거처하기에 적합한 터가 투구바위 안에 자리잡고 앉아 있는 주사암이다. 전설에서는 주문(주술) 외운 걸로 되어 있다. 주술은 신(神)을 설득하는 소리이다. 신라시대에 존재했던 신인종(神印宗)이 바로 주술을 전문적으로 연마해서 신중을 부리는 주특기가 있었다. 그 예로 신라의 명랑법사가 감포 앞바다에서 신라를 침략해 들어오는 당나라 수군을 물속에 수장시켰다는 주술이 바로 신인종의 주술이다.
여기서 숭정(崇禎)은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 때의 연호(1628∼1644)이다.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조선은 한족인 명나라를 정통으로 보고, 청나라는 만주족이란 명분론에 따라 공식적인 외교 문서에는 청나라 연호를 쓰고 나머지는 청나라 연호를 쓰는 것을 꺼려 명나라 연호를 거의 사용하였다. 숭정기원후5임오중춘(崇禎紀元後五壬午仲春)은 숭정기원이 1628년이고, 60갑자를 4번 더한뒤 5번째 60갑자 가운데 임오년을 더하면 (1628+240+임오년)=1882년이 되고 중춘은 음력 2월, 상완(上浣)은 1∼10일까지를 말한다. 즉 편액 글씨는 1882년 음력 2월 초순에 대곡거사가 쓴 것이다.
법당 앞의 계단을 통해서 오른쪽으로 200m쯤 가면 평평한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대략 해발 700m 높이에 있는 마당바위이다. 넓이는 100여평 크기 정도로, 50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마당바위에 앉으면 바위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곧바로 머리 쪽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마당바위는 삼면이 깍아지른 절벽으로, 거의 50~70m 높이 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에는 신라시대 때부터 부산성(富山城)이 있었던 군사요충지였다. 경주의 동쪽을 방어해주는 산이 토함산이다. 동쪽에서는 왜구가 공격해 왔다. 그래서 토함산에는 석굴암을 조성해서 왜구를 견제하고, 석굴암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동해의 감포 앞바다에는 문무왕 수중릉이 있는 대왕암이 포진하고 있다. 서쪽은 백제로부터의 공격이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이 백제 병사들의 공격을 막아주는 곳이 바로 주사암이 있는 오봉산이고 부산성(富山城)이었다. 그 유명한 여근곡(女根谷)도 바로 이 오봉산 자락에 있다. 주사암은 하늘의 신병을 불러들일 수 있는 터로, 신령한 절집임이 분명하다.
◈ 포토 및 글쓴이 : 서백 김춘식 - 위에 기술한 내용 중에는 한국의 사찰(대한불교진흥원), 전통사찰총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간조선, 그리고 Daum에서 배포한 자료 등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한 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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