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173 - 대구시 달성군 비슬산 중턱에 내려앉은 소재사 본문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중턱(해발 450m)에 자리 잡고 있는 소재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재앙을 없앤다는 의미의 소재사(消災寺)는 창건 당시 이름인지도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다.
그 뒤 1358년(공민왕 7)에 진보가 중창하였고, 1457년(세조 3)에 활륜이 중건하였으며, 1510년(중종 5)에 외암이 중수하였고, 1701년(숙종 27)에 청심이 중창하였으며, 1841년(헌종 7)에는 완산이 중창하였다. 그 뒤 1857년(철종 8)에 법허가 중수하였으며, 1900년(광무 4)에는 왕산이 중창하였다.
1976년 대웅전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인 대웅전은 1976년 달성군에서 보수하여 법당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명부전은 최근에 허물어진 것을 다시 중수하였다. 이 절 근처에는 피부병과 고질병에 좋다는 약수가 솟는 금수정(金水井)이 있다. 샘물의 수면 위에 금가루 모양의 작은 먼지들이 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절 뒤편에 있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는 높이 2.8m의 달성용봉동석불입상은 화강암에 조각한 불상으로 약사불로 추정되며,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또한 소재사를 품고 있는 비슬산(琵瑟山)은 산 정상의 바위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고 해서 비파 비(琵), 큰 거문고 슬(瑟)의 산이름이 붙었다. 신라 때에는 포산(包山)이라고 불렀으며, 예로부터 정성대왕(靜聖大王)이라는 산신이 사는 성지로 알려져 있다.
기둥이 일직선상에 한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고 한다. 일주문은 해탈교를 건너와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는 일주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인 것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소재사 전경.
불기 2561년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기 위해 달아놓은 연등들이 햇볕을 받아 지면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만들어낸 모습이 환상적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에 다포계 맛배지붕의 건물로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외벌대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전면 벽체는 3칸 모두 문으로 구성하였는데 어칸에는 4분합 여닫이문을, 퇴칸에는 이분합 여닫이문을 달았다. 그리고 배면 어칸에 두짝문이 있었던 연귀맞춤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러한 배면 3칸 모두에 창호를 둔 것은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초까지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3호인 대웅전은 보수시 확인된 상량문의 내용을 보면, 1673년에 명부전과 함께 지었으며, 1857년(철종 8년)에 법로 화상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한때 상주했던 대중이 산내 암자와 더불어 3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사역이 대단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건물 장식은 전면에는 금단청을 하였고, 측면과 배면은 모로단청을 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불단 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는 약사여래불과 연등불을 모셨다.
대웅전 내부의 서쪽 벽면에 모셔진 신중탱과 칠성탱.
본존불의 수인으로 보아서는 석가모니부처님으로 볼 수 있지만,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시립하고 있는 모습에서 아미타삼존불의 탱화임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수미단에 조각된 수생생물인 가재와 산예의 모습.
삼성각.
삼성각 내부에는 산신탱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용왕탱을, 우측 벽면에는 독성탱을 봉안하였다. 대개 삼성각에는 칠성탱을 중앙에 모시는 구도인데, 이 절집에서는 칠성탱 대신 산신탱을 모신 것으로 보아 산신신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추측된다.
좌로부터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명부전이 위치하고 있는 단출한 전각들이지만, 단아한 맛이 느껴지는 정감이 가는 절집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봉안한 법당으로 지장전 또는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다 구제한 다음 부처님이 될 것을 서원한 보살로서, 아주 큰 서원을 세웠다 하여 대원본존이라고도 한다. 지물은 대개 육도를 상징하는 육환장을 짚고, 보주를 들고 있으며, 도상은 성문비구형 혹은 두건형이다.
부처님 입멸후에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의 무불(無佛)시대에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6도의 중생을 제도할 것을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부촉받은 보살이다. 특히 지장보살의 좌보처로 등장하는 도명존자는 김교각 스님의 수제자로 실존했던 스님이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재수보살의 전신이다. 한편 중국불교에서는 무독귀왕을 도명존자의 아버지인 민공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목조 지장보살상 복장물에서 나온 ‘10대왕 조상기 발원문’에 의하면 '康熙 十四 乙卯 四月'이라 기록되어 있어 조선 중기인 1675년에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찰 입구에 세워지는 장승은 이곳부터 사찰의 영역이 시작됨을 알림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금하는 기능과 불법을 지키는 신장상으로서의 구실을 한다. 그러나 이곳 장승은 다리를 건너기 전 우측에 돌탑들과 함께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사찰과는 무관한 장승이다.
위에 기술한 내용 중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과 Daum에서 배포한 자료 등의 내용 일부를 참고하여 작성한 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사진 및 글 : 서백(徐白) 김춘식(金春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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