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괴산 보개산 중턱에 위치한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본문
각연사는 구전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514~519)때 유일대사(有一大師)가 세웠다고 하나, 조선 영조 44년(1768)에 기술된 (覺淵寺大雄殿上樑文)에 의하면 고려 태조부터 광종 년간(918~975)에 통일대사(有一大師)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비로전 대들보에서 발견된 묵서에는 고려 혜종(944~945)년간에 중수된 기록이 보인다.
보물 제1295호로 지정되어 있는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槐山 覺淵寺 通一大師塔碑)'는 고려 전기의 승려인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비로 각연사 동남쪽의 보개산 계곡을 따라 1㎞쯤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의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석비중의 하나로, 고려 광조 9년(958)에 건립되었다. 탑비는 유명한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스님께서 입적하시면 좋은 자리를 찾아 장사를 지낸다. 장사를 지낸 후에 부도를 만들고 스님의 행장과 모든 제반 내용을 조정에 올리게 된다. 이를 받은 조정은 스님의 업적에 따라 탑비 건립 여부를 판단한 이후, 탑비에 새겨질 스님의 행장을 당대 최고 문장가에게 기술하게 하고 임금은 스님의 시호를 내리게 된다. 이후 시호와 문장을 사찰에 보내 탑비가 건립된다.
이런 연유로 탑비가 일반 승려라면 탑비가 남아있을리 없다. 대부분 당대 국사급의 고승 대덕만이 탑비를 갖게 되는 것이며, 이 탑비의 기록은 당대 불교사 연구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그러나 탑비의 탑신이 남아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탑비가 부러져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연사의 통일대사 탑비는 탑신이 건립당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탑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오랜 세월과 더불어 그 내용이 마모되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탑비의 내용 중에서 이 비가 통일대사(通一大師)의 탑비이며, 스님이 당나라에 유학하셨고, 고려 태조를 만난 일이 있으며, 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이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당대의 문장가였던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다는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 통일대사탑비는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螭首)를 모두 갖춘 완전한 형태로, 지대석 위에 귀부를 놓고, 귀부 등에 비좌(碑座)를 얹고, 그 위에 비신을 세우고, 상부에 이수를 장식하였다.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오면서 나타나게 되는 양식상의 특징이다. 화강석으로 된 귀부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편장(偏長) 6각의 귀갑문을 조각하였고, 귀두(龜頭)는 용두(龍頭)화하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귀는 작고 눈은 둥글고 크며 안상(顔相)은 험상궂다.
귀부의 등에 얹은 비좌는 양옆에 안상(眼象)이 있고 윗면에는 복련(伏蓮)을 새겼다. 비신은 높이 258㎝, 폭 128㎝, 두께 25.4㎝로, 비문은 정해서(正楷書)로 46행 48자, 3,500여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마멸되어 260자 정도의 명문(銘文)만이 드문드문 남아있다. 비문에는 '弟子大德釋聰訓 忠原府上聰 釋訓又 同下聰 釋桂茹 同釋三曉 直歲僧 處直 典座僧 處緣院主僧 聰禮 內儀 省令 匡謙內奉省令 俊弘 侍中 仁奉' 등 건립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朝鮮金石考에 실린 비문내용에 의하면, 통일대사의 속성은 김씨로 선조는 계림인(鷄林人)이며, 고려초에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와 왕실에서 불법의 진리를 강론하는데, 대사의 법문을 듣고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대사가 입적하자 고려 광종이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한림학사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도록 명하여 탑비가 세워진 것이다.
김정언은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전남 광양 옥룡사 동진대사탑비(958년)을 찬술하기도 하였다. 이수는 높이 110㎝, 폭 175㎝, 두께 76㎝로 아래면에 2단의 받침을 두었고 앙련을 새겼다. 이수의 사면에 조각된 네 마리의 용은 웅장한 느낌을 주며, 중앙에 보주를 장식하고 네 마리의 용이 보주를 안으로 향하여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원위치에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석비로, 고려 광조 9년(958)에 건립되었다. 받침돌에 새긴 거북머리의 양식상 변화나 각 부분에 새긴 조각수법은 당시 석비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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