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95 -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지보사 본문
경북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280번지 선방산(船放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 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지보사(持寶寺)에는 보물 제682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으며 19세기 건축물인 보화루(寶華樓)도 보존이 잘된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는 이 절은 신라 문무왕13년(673)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이다. 예로부터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가질持, 보배寶자를 써서 '지보사(持寶寺)'라고 했다 한다.
절이 처음 만들어진 때부터 있었던 세 가지 보배은 신라시대부터 전해온 청동향로(선방산에서 나는 단청의 물감에 쓰이는 오색 흙을 꼽는 경우도 있다)와 열 사람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가마솥, 아무리 갈아도 닳지 않는 맷돌 등의 보물이 있었는데 임진왜란당시 소실되었다고 하는 설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하는 설이 전할 뿐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조선 후기에서부터 근세까지 남아있는 여러 자료에서 '持寶寺', '持寶庵'이란 사명이 나타나고 있다. 1999년 대웅전 해체당시 나온 상량문에는 지보사의 '지(持)'가 '땅(地)'로 쓰여 있어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절터 자체가 보물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현재 지보사에 남아있는 보물이라면 통일신라시대 때 축조되어 보물 제682호로 지정된 지보사 삼층석탑과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불만이 전한다.
지보사에는 7점의 현판이 있는데 그 가운데 1826년(순조 26)에 기록한 ‘선방산지보사불사사적기’와 ‘지보사등촉계창설기’가 가장 오래되었다. 이에 따르면 지보사에 관음상 3기가 봉안돼 있는데 갑자기 절이 쇠락해 1814년에는 절에 스님이 떠나갈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동명 천오(東溟 天悟)스님이 계한(戒閒)스님과 더불어 모연을 하고 다른 스님들을 불러모아 상주케 하여 1825년 여름에 불사를 하였으니 삼존불상을 개금하고 탱화 4점을 보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불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1818년부터 인근의 신도와 스님을 한데 모아 이른바 등촉계(燈燭稧)를 만들어 결연했기 때문에 성사된 것이었다. 이 후의 불사는 1936년부터 주석한 백동허 스님이 주도했다. 이후 1963년 위령실(慰靈室) 건립, 1972년과 1977년에 중수가 있었으며 1981년에 지금의 보화루인 강화당(講華堂)을 중건했다. 최근에는 삼성전, 대웅전 중건과 담장 축대를 쌓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682호 지보사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 모서리에는 우주(隅柱)를, 가운데에는 탱주(撑柱)를 두고, 기둥 사이에는 1층 탑신에는 사자상, 2층 탑신에는 팔부신중상이 어우러져 있는 아주 아름다운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는 고려 초기의 탑이다. 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판돌을 삽입하여 1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비(門扉,문짝 모양)를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옥개석)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하였다. 상륜부(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 남아있다. 이 탑은 본래 산 너머 극락사(極樂寺)에 있었는데 절이 폐사되면서 군위읍 동부리 절 골로 옮겼다가 다시 지보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지보사 삼층석탑의 2층 기단에 새겨진 팔부신중상의 일부분이다.
지보사 경내의 전경이다.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19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보화루(寶華樓)이다. 안에는 지보사의 중건과 중수 사실을 적은 현판 7점이 걸려 있는데, 「선방산지보사불사사적기(船放山持寶寺佛事事蹟記)」(1826년), 「지보사등촉계창설기(持寶寺燈燭幾炷設記)」(1826년), 「지보암중수기(持寶菴重修記)」(1942년), 「위령실신축기(慰靈室新築記)」(1963년), 「지보암불사기문(持寶菴佛事記文)」(1972년), 「불사」(1977년), 「강화당불사기(講華堂佛事記)」(1981년)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선방산지보사불사사적기」에는 불사에 참여했던 승려 수십명의 이름이 보이는데, 지보사 승려뿐만 아니라 다른 사찰의 승려 명단도 나와 있어 당시의 불교사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자료가 충분히 될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6)
보화루(寶華樓) 건물 안에 걸려있는 "寶華樓(보화루)" 편액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에 다포계 양식의 대웅전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 협시하고 있는 목조석가모니 삼존불좌상과 원불 약 500기가 같이 봉안돼 있다. 근래 대웅전(大雄殿) 중건 당시 상량문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절 이름을 地寶寺라 적어 놓았다. 持와 地는 발음이 같지만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대웅전이 처음 지어졌던 18세기 무렵에는 地寶寺라는 사명을 쓰지 않았나 추측된다.
대웅전 주련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천상 천하 어디에도 부처님 같은 분 안 계시고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온 세상 둘러봐도 또한 비교될 분 없도다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경)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았으나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모두가 부처님같이 존귀한 분 없도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우측에 있는 삼성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건물이다. 삼성전은 3칸의 방이 따로 있는데 좌우의 방은 요사로 활용하고 있고 가운데 방에 불단을 두고 나반존자상과 용왕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고, 칠성탱, 독성탱, 용왕탱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로서 오도선원(悟道禪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1칸씩의 규모의 산령각(山靈閣)으로 전각이 너무 작아서 밖에서 참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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