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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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차나무가 있는 혜산서원

徐白(서백) 2011. 4. 10. 02:01

 

경남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에 위치한 혜산서원(惠山書院)은 1994년 7월 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로 지정되었다. 서원은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고, 대유학자인 선현들에게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일직손씨() 5현()을 받드는 서원으로, 격재(格齋) 손조서(瑞, 1412~1473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53년(영조 29년)에 서산서원()을 건립하였다.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린 이후 ‘서산고택(西)’이나 ‘철운재()’로 편액하여 왔으며, 1971년 정평공 손홍량, 격재 손조서, 모당 손처눌, 문탄 손린, 륜암 손우남 등 안동 일직 손씨 명현 다섯을 이 곳으로 옮겨 와 중건하고 혜산서원이라 하였다.

 

혜산서원은 교육과 제례공간을 일직선으로 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형태와 달리 전(田) 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북쪽에는 사당, 북동쪽에는 강당, 남서쪽에는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고, 남동쪽으로는 서당영역이 각기 담장으로 구분되는데 이같은 배치는 서원철폐령 당시 서원을 보존하고자 구획을 나누고 주택이나 조상을 모시는 재실로 위장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혜산서원은 씨족마을의 서원배치와 '서원 철폐령' 이후 서원건축이 어떻게 변형돼 살아남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도 할 것이다. 서원 경내에는 숭덕사(崇德), 강당, 동재(), 서재(西), 상례문(), 신문(), 중문(), 전사당(), 신도비각(), 다원서당() 등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혜산서원의 명물은 600년 된 차나무이다. 서원 안뜰에는 차나무 고목 세 그루가 있는데 후손들에 의하면, 이 차나무는 그들의 조상이 경북 안동에서 이주할 때 옮겨 심은 것이라 한다. 조선 태종(1400~1418년) 연간에 일직 손씨 시조인 정평공 손흥량의 증손자 관이 밀양으로 이사를 올 때 안동 일직면 송현리 일직 손씨 재실에 자라고 있던 차나무 중에서 세 그루를 옮겨 심었다는 것이다.(참고자료 : 부경문해 자료)

 

 

 

오히려 禮를 갖추고 들어가야할 문이란 뜻의 상례문(尙禮門)과 현판

 

 

 

혜산서원(惠山書院)과  현판

 

 

 

정원당(正源堂) 현판 

 

 

수도헌(須到軒) 현판

 

 

마음 속으로 헤아려 읽는다는 뜻의 心読堂(심독당) 현판 (참고 :  読과 讀은 같은 글자로 읽을 독)

 

 

서산고택(西山古宅) 

 

 

철운재(撤雲齋) 현판 

 

 

철운재기(撤雲齋記) 현판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불발기창이 있는 불발기창 분합문이다. 불발기창은 대청과 방 사이에 설치하는 문의 중간에 다는 창으로 빛의 투과를 좋게 하기 위해 보통 한 겹의 창호지만 바른다.

 

 

 

용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가는 모습을 귀공포에 조각해 놓았는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다. 용두어신은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어변성용(魚變成龍)을 뜻한다. 어변성용은 "후한서" 이응전의 등용문(登龍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내용을 보면 “도화(복숭아)꽃이 필 무렵 중국 黃河의 잉어들은 센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서 상류의 협곡에 있는 龍門으로 다투어 뛰어 오르는데, 그곳을 넘어서면 용이 된다는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변해 용이 되는 등용문에 비유하였듯이 이곳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에게도 청운의 꿈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 상징적인 조형물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직손씨() 5현()의 위패를 모셔 놓고 향사를 올리는 숭덕사(崇德祠) 

 

 

 

소나무 몸통(樹皮, 수피)의 껍질이 거북이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귀갑송(龜甲松)이라고 부르는 소나무가 혜산서원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