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사찰이야기18 - 팔공산 수도사 본문
팔공산 기슭의 대표적인 사찰은 동화사, 은혜사, 파계사, 선본사(갓바위)와 영천 수도사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사찰은 아니지만 사찰을 중심으로 연출된 자연환경은 어느 사찰보다 뒤지지 않는다. 수도사의 자연은 치산계곡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치산계곡은 수도사 1km 아래에 있는 치산저수지부터 시작하여 6km까지 거대한 암반과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혜사의 말사이며,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치산리 311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수도사는 647년(진덕왕 1) 자장(慈藏, 590∼658)과 원효(元曉, 617∼686) 두 스님이 함께 금당사(金堂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뒤의 연혁은 잘 알 수 없고, 고려시대에 들어와 1206년(희종 2) 보희(普熙)국사가 중창하였는데 보희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의 역사도 문헌이 전하는 바가 별로 없다. 1805년(순조 5)에 징월 정훈(澄月正訓) 스님이 중창하였다. 정훈 스님은 동화사를 중심으로 대구, 경북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고승이었다.
그밖에 사찰에 전하는 사적기나 역사서는 아니지만, 조선시대 중기(18세기)의 학자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이 전국의 명산대찰을 유람하며 지은 "산중일기(山中日記)"에 수도사가 나오므로 이 기록을 수도사 역사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산중일기"에는 정시한이 1686년(숙종 12) 6월 24일 수도사의 응담(應湛) 스님을 염불암(念佛庵)에서 만났고, 또 8월 20일에 수도사 영자전(影子殿)에 가서 여러 날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수도사에 승통(僧統), 응담(應談)을 비롯하여 당시 나이 83세의 처순(處淳), 그리고 옥륜(玉倫), 옥행(玉行), 탄흡(坦洽) 스님 등이 맞아 주었다는 내용도 보인다. 또 정시한은 수도사 터에 대해 말하면서, 건좌손향(乾坐巽向), 곧 서북쪽에서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방위로 비록 평평한 편은 아니지만 폭포 바로 머리 위에 있어서 이곳이 곧 정기가 모이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도 하여 당시 수도사의 여러 정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근대에는 1929년 윤경천(尹敬天) 스님이 신도 김용필(金龍弼)과 함께 원통전을 중수하였다. 최근에는 1979년 우희장(禹熙璋) 주지가 이용하(李容夏) 신도회장을 비롯한 여러 신도의 시주를 모아 해회루, 요사 등을 중수하였다. 그리고 1985년에 삼성각을 지었으며, 2000년 6월에 석조 약사여래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치산관광지에서 수도사에 오르는 초입에 있는 치산저수지이다. 이곳에서 1km정도 올라가면 확트인 곳에 수도사가 자리 잡고 있다. 수도사에서 1km 정도 더 올라가면 치산계곡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수도폭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넓은 공간에 한적하게 자리잡고 있는 원통전과 산령각이 오히려 탐방객들에게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맞배지붕이고, 공포는 다포식이며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높게 쌓은 2단의 석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안에는 최근에 봉안한 금동관음좌상과 관음후불탱, 그리고 신중탱이 있다.
관음보살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 전각을 '원통전(圓通殿)' 또는 '원통보전(圓通寶殿)'이라고 한다. 원통(圓通)은 '주원융통(周圓融通)'의 줄임말로 '진리는 두루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말로 관음보살의 불격(佛格)을 표시하는 용어이다.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소리를 보는 것'으로 관세음보살은 고통받는 중생의 소리를 듣고 도와주는 자비의 화신(化身)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여 연꽃가지를 잡고 있으며,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있다. 뒤에 걸려있는 관음후불탱은 수월관음보살탱으로 관음보살 옆에 놓여진 정병에는 버들가지가 꽂혀져 있다.
이 신중탱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들을 배치한 복잡한 구도의 불화이다. 날개관을 쓰고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중심으로 보살형의 범천(梵天) 2분이 합장을 하며 뒤에 서있고 그 주위로는 무장한 팔부중(八部衆) 등이 기득 에워싸고 있다.
원통전 내부의 대들보에 그려진 용의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원통전의 다포식 공포양식
수도난야(修道蘭若)라고하는 편액이 붙은 건물로 난야는 아난야(阿蘭若)의 줄임말로 산림(山林) 또는 황야(荒野)라는 뜻이다. 마을에서 적당하게 떨어져 비구가 거주하며 수행하는 조용한 장소를 의미한다. 즉, 수도(修道)하는 장소를 말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적은 현판이다. 정면 5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가운데 3칸은 법당으로, 좌우 한 칸씩은 선방으로 사용한다.
건물 내부의 불단에는 아미타불좌상을 모시고 있다. 둥근 얼굴에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으며, 육계는 높게 솟아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에는 띠매듭을 표현하였고 무릎 위에 놓여진 손의 수인은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이다. 아미타불은 수명장수와 극락왕생을 보장하며 자비를 베푸는 분이다. 뒤에는 아미타후불탱이 단순한 구도로 그려져 걸려 있다. 금동아미타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금동 지장보살좌상 500위가 봉안되어 있다. 그밖에 최근에 그린 신중탱도 모셔져 있다.
산령각(山靈閣)이란 편액이 붙은 이건물은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의 작은 규모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린 아담한 목조 건물이다. 창호는 정자(井)살창으로 짜아 2분합의 여닫이문을 달았다. 안에는 산신탱 1폭만이 봉안되어 있다.
일반 사찰에서 흔히 보는 산신탱과 구별되는 아주 단순한 구도의 산신탱이다. 산의 신령(神靈)으로 존경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호랑이를 불교화하면서 산신(山神)으로 승격시켜 수용하여 그린 것을 산신탱이라 한다. 이 산신탱의 도상적인 특징은 호랑이의 변화신인 산신을 중심으로 반드시 호랑이와 함께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흰수염의 산신 옆에 호랑이가 배치되어 있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壽), 복(福), 재(財)의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삼성각 안에는 세 분의 성인을 모시는 전각으로 칠성(七星)과 산신(山神), 독성(獨聖) 등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이고 측면에는 풍판을 단 건물이며,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창호는 빗살창으로 짜아 2분합의 여닫이문을 달았다.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고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구조이다. 안에는 칠성탱을 중심으로 독성탱과 산신탱이 모셔져 있다.
삼성각(三聖閣)에 모셔진 세 분은 목각탱인데, 칠성탱(七星幀)을 중심으로 독성탱(獨聖幀)과 산신탱(山神幀)을 모시고 있는 불단이다. 칠성탱은 하늘의 별인 북두칠성이 하늘의 일월성진(日月星辰)을 다스리고 천재지변을 통솔하는 주제신(主帝神)으로 승격하여 신으로 숭배된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부처님으로 승격시켜 치성광여래를 주존으로 칠성을 그림으로 도상화한 것이다. 독성탱은 긴 흰눈썹이 특징적인 독성을 단독으로 크게 그린 그림을 말한다. 독성은 범어로 pindolabharadvaja하며, 빈두로파라수(賓頭盧頗羅隨)로 음역되는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이다. 이 분은 남인도의 천태산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으로 나반존자(那畔尊者)로 잘 알려진 분이다. 산신탱의 도상적인 특징은 호랑이의 변화신인 산신을 중심으로 반드시 호랑이와 함께 그려진다.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는 약사불로 손에는 약이 든 약합(藥盒)을 들고 있다. 연화대좌 위에 광배가 있는 약사불입상이다. 좌우에는 연화좌 위에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입상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 사진으로 표현된 수도사 노사나불괘불탱
수도사 노사나불괘불탱(修道寺 盧舍那佛掛佛幀)은 조선시대 숙종 30년(1704년)에 조성되었으며, 1997년 8월 보물 제1271호로 지정되었다. 재질은 마본채색이고 괘불탱의 크기는 폭이 4.32미터이고, 길이는 8.36미터이다. 이 괘불은 그림의 테두리 맨 윗쪽에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는 글씨가 둥근 원 안에 쓰여 있어 노사나불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의 구성과 양식을 보면, 독존(獨尊) 형식의 노사나불이 둥근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원만상의 보살 형태로 그려졌다. 연꽃 가지를 받쳐들고 있으며, 보관 주위로는 삼신불 중 법신불인 비로자나불 형태의 화불(化佛) 일곱 분이 모셔져 있다. 긴 네모꼴의 신광에 둥근 두광을 하고 있는 노사나불은 밝고 화려하며, 특히 둥근 어깨위로부터 팔꿈치까지 흘러내린 검은색의 보발(寶髮)로 인해 상의 형태가 더욱 뚜렷해 보인다. 바탕이 거친 삼베 바탕으로 윤곽선이 다소 굵게 표현되고 있지만 세부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고, 선 또한 치밀하게 구사되고 있어 선의 강약이 잘 나타난 세련미를 엿볼 수 있다. 색상은 붉은색과 녹색 위주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신광 바탕과 하의 자락을 하늘색으로 처리하여 중앙의 상을 훨씬 돋보이게 하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치마 자락의 구불구불한 옷주름 처리는 파도를 연상케 하여 다소 과장적이지만 압도적인 화면에 잔잔한 율동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어 당시의 뛰어난 솜씨를 짐작케 해 준다. 조성 후 1822년(순조 22)에 한 차례 개수한 적이 있긴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18세기 초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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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 수도사에는 원통전 앞에 조성되어 있는 괘불석주(掛佛石柱)가 있다. 괘불은 법회시 법당 앞마당에서 예불을 드릴때 사용하는 큰 규모의 불화를 말하는데, 이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괘불석주이다. 보통 괘불석주와 당간지주(幢竿支柱)를 혼동하는데, 당간지주는 절 입구에 조성되는 큰 돌기둥이며 괘불석주는 법당 앞에 세워지는 돌기둥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둥글거나 네모난 구멍이 2~3개가 마련되어 괘불대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도반야'란 편액이 붙은 건물 맞은 편에 요사 겸 종무소로 사용되는 해회루(海會樓)가 있었으나. 그 건물을 헐고 현재 새로운 건물이 지어져 공사가 한창 마무리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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