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서백(김춘식)의 사찰이야기196 - 최치원이 즐겨 찾았던 곳, 합천 청량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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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김춘식)의 사찰이야기196 - 최치원이 즐겨 찾았던 곳, 합천 청량사

徐白(서백) 2021. 1. 3. 22:29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황산리 매화산 기슭에 있는 청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의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최치원조 내용을 보면 이 절은 최치원(857~?)이 즐겨 찾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이미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청량사에서 해인사로 넘어가는 입구의 돌벼랑에는 최치원이 친필로 쓴 시가 새겨져 있고 동국여지승람파한집등에 '최치원제시석'이라는 기록이 있어 삼국사기의 내용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절이 해인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절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811(순조 11)3칸의 법당과 요사채를 지었으며, 그후 최근에 다시 요사채와 건물들을 중수했다고 한다. 이 절의 가람배치는 높은 석축 위에 남북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일반적인 산지 가람의 유형을 따라 석축을 높이 쌓아 마련한 3단의 대지 위에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약광전(藥光殿)과 상락당(常樂堂), 적묵당(寂默堂), 감로당(甘露堂) 등의 요사를 갖추었다. 중요문화재로는 석조석가불좌상(보물 제265)을 비롯하여 3층석탑(보물 제266), 석등(보물 제253) 등이 있다.

 

감로당( 甘露堂 )
상락당(常樂堂)
적묵당(寂默堂)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청량사는 매화산(梅花山) 기슭에 있는 사찰로,『삼국사기』에 의하면 최치원(崔致遠)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한다. 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며, 바닥돌 아래에 화강석을 두른 널찍한 구역을 이루고 있는 보기드문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닥돌 위의 아래층 기단은 가운데돌을 한 돌로 하여 4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다. 상층과 하층 기단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기단부의 맨윗돌 네 모서리는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 특색이 있고, 그 위로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구성하였으며,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아래에 5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경사진 면은 완만하나 네 귀퉁이는 경쾌하게 치켜올라가 있다. 이 탑은 각 부분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면서 조각수법도 경쾌하고 우아하여,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1958년 이 탑을 수리할 때 3층 지붕돌에서 사리를 두던 둥근 공간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3층석탑과 나란히 놓여 있는 석등이다. 각 부재가 8각으로 이루어졌으며, 아래에서부터 받침부분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 지붕돌과 머리장식부분으로 구성된다. 8각의 아래 받침돌은 측면에 사자상과 향로를,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각 끝마다 작은 꽃을 돌출시켰다. 가운데 기둥은 장고를 세워놓은 모양이며, 그 위로 연꽃모양의 윗받침돌을 올렸다. 받침부분 위로는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이 놓여있는데 네 면에 창을 내고 옆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지붕돌은 얇은 편으로 경사면은 완만하고 각 귀퉁이는 곡선을 이루며 치켜올려져 있어 경쾌하다. 머리장식부분은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두 개의 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평면이 8각인 석재를 층층이 쌓아 올려 신라시대의 기본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나, 받침부의 가운데 기둥이 변형된 점이나 조각수법 등으로 미루어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약광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
약광전에 봉안된 신중탱화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측에 위치한 요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보물 제265호)은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완전한 형태의 불상으로 불신의 보존상태도 매우 좋은 편이다. 나발이 표현된 머리 위에는 육계가 뚜렷하지 않다. 얼굴은 살이 붙어 풍만한 편이며 코와 입이 작고 야무지게 표현되었지만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표정은 잃지 않았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몸에 밀착되어 신체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양감을 강조했으며, 옷주름은 일정한 단을 이루며 평행계단식으로 간략하게 처리했다.

 

특히 양 다리 사이로 모아진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 본존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광배는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형거신광배인데 2줄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두광 위에는 화불을 배치하는 반면 그 바깥쪽에는 비천상과 화염무늬를 장식했다. 이 불상은 전반적으로 탄력이 있으며 양감을 강조하고 있으나 낮아진 육계, 짧은 코와 작은 입, 부채꼴 모양의 옷주름 표현, 장식화된 대좌 등에서 8세기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굴암 본존상 양식을 이어주는 9세기경의 불상으로 중요한 예이다.  

 

대좌는 사각형의 연화대좌로 중대는 각 모서리마다 기둥 형태를 새기고 그 사이에 2구의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중대에 표현된 보살상은 원형의 두광을 가지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손의 위치가 모두 달라 마치 공양물을 바치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하대는 복련(覆蓮)의 연꽃무늬와 갑옷에 무기를 들고 앉아 있는 8구의 팔부중상이 차례로 조각되어 있다.

 

참고자료 출처 : 에 기술한 내용 중에는 한국의 사찰(대한불교진흥원), 전통사찰총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백과, 문화재청, 그리고 Daum에서 배포한 자료 등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한 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