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영태2년명납석제호 본문

불상,마애불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영태2년명납석제호

徐白(서백) 2012. 9. 3. 22:05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586번지에 위치한 내원사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1021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은 지리산 중턱에 있던 석남암사지에 있는 것을 내원사로 옮겨 놓은 비로자나불상이다.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의 중심불이다. 화엄경은 석가모니가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 3·7일인 21일 동안 설한 경전이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통해 진리의 당체인 비로자나불과 합일한다 이때 설해지는 것이 바로 화엄경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와 비로자나불은 개별적이지만 하나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좌우보처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의 좌우협시가 되기도 한다.

 

 

내원사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은 지리산 중턱에 있던 석남암수(石南巖藪)에 있던 것을 1970년 후반에 옮겨온 것으로, 현재 보물 제1021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대좌 속에서 사리기가 발견 되었는데 사리함에 적힌 명문에 따르면, 776년 신라 혜공왕 2년에 비로자나불을 조성하여 석남암사에 모신다는 내용이 있다.

 

 

비로자나불의 상체는 건장한 모습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법의〔가사 혹은 납의(衲衣, 衲은 기웠다는 뜻)〕주름은 촘촘하고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있다. 대좌는 8각의 하대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중대는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상대에는 2겹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위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하단까지 깨져 약 3분의 1정도가 없어져 버렸다.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작은 사리기(舍利器)가 나왔다. 영태2년(永泰二年)이라는 명문이 있는 이 항아리는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영태2년명납석제호(永泰二年銘蠟石製壺)는 국보 제233호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傳 山淸 石南巖寺址 蠟石舍利壺)라는 이름으로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태 2년(永泰二年)은 신라 혜공왕 2년(766)임을 나타내고 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또한 불상 대좌의 중대석에 사리를 봉안한 것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있는 사례로 복장물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흔적이다.

 

 

 

국보  제233호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 (傳 山淸 石南巖寺址 蠟石舍利壺)"는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납석사리호는 경상남도 지리산 암벽 아래에 있는 암자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몸통에 비해 도톰한 턱이 주둥이에 둘러져 있고, 밑 부분은 평편하고 넓어 안정감을 준다.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2줄의 가로선을 새겼다. 뚜껑 윗부분에도 2줄로 원을 그리고 안쪽 가운데에는 연꽃을 새겼다.

이 항아리 표면에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 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새겨진 글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어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으나,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제작 기법이나 뚜껑 처리 방식, 글자의 새김 등 미술사적 측면과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 석불의 법사리 봉안과 조성 등 불교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자료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