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의 사찰이야기
보경사 원진국사비 본문
널찍한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신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신의 둘레에는 덩굴 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의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년)으로 원진국사가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622번지 보경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는 고려 중기에 보경사를 중창한 원진 국사(1171∼1221)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하여 1224년(고종 11)에 세운 비로서 1963년 보물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원진국사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석은 귀부(龜趺)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栗首)가 없는 간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신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규수형(圭首形)이라 부르는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비신의 상단에는 ‘원진국사비명(圓眞國師碑銘)’을 전자체(篆字體)로 횡서(橫書)하였으며 비문(碑文)은 ‘고려국보경사주지대선사증시(高麗國寶鏡寺住持大禪師贈諡) 원진국사비명병서(圓眞國師碑銘疊序)’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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