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75 - 금전산 금둔사

徐白(서백) 2012. 3. 14. 21:18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전산에 자리 잡고 있는 금둔사(金芚寺)는 태고종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이다. 금전산(金錢山)이란 한자를 뜻풀이하면 '쇠 金'과 '돈 錢'이 되어 금돈으로 이루어진 산 이라는 뜻이다. 산이름은 부처님의 오백 비구(나한) 중 정진제일 금전비구의 이름을 인용하였고, 산 위에 여러 모양으로 서 있는 암석은 500나한이 선정에 든 모습이라 한다.

 

금둔사(金芚寺)의 '금'은 부처님이고, '둔'은 싹이 돋는다는 뜻으로, 일체중생은 각기 불성을 갖추고 있기에, 스스로 조건만 맞추어 주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의미란다. 산 이름이 금전산인 관계로 몇년 전에는 복권열풍과 더불어 다시 한번 그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금둔사(金芚寺)와 관련된 최초의 공식기록 역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볼 수 있다.  “金芚寺 在金錢山(금둔사 재금전산)”이라는 기록으로 이를 통해 조선초까지 이곳에 금둔사라는 사찰이 계속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에 전하는 연혁에 의하면 금둔사의 초창은 백제 위덕왕 30년(583)에 담혜화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음으로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금전산내에 금강암(金剛庵)을 지으시고 주석하셨다.

 

또한 사자산문을 개창하신 철감국사(澈鑒國師)와 제자 징효대사(澄曉大師)가 이곳에서 금둔사를 중창하셨으며 이때 현재의 삼층석탑과 석불비상을 건립하셨고 동림선원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리고 1385년 고봉화상(高峰和尙)이 금둔사를 중장했으며 산내에 수정암을 짓고 주석하셨으며 후에 송광사로 가셔서 16번째 국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찰이 지속되다가 폐사가 되었으며, 선암사 선원(禪院)에 계시던 지허(指墟)스님께서 폐사되어 논밭으로 바뀌어 있던 이곳에 오셔서 1983년부터 복원 불사를 시작해 현재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금둔사내에는 신라 말(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둔사 삼층석탑(보물 945호)과 금둔사 석불비상(보물 946호)이 남아 있다.

 

사찰로 오르는 길목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 목장승(벅수)은 절의 수호신 역활을 한다.

몸통에는 護法善신(호법선신)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어 불법을 수호하는 착한 신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목장승(벅수)으로 몸통에는 放生淨界(방생정계)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깨끗한 땅. 즉 정토이니 탐진치 삼독에 매여 있는 중생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속의 번뇌로부터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게로 향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금둔사의 일주문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며 다포형식의 건물이다.

 

정면의 '金錢山 金芚寺(금전산 금둔사)'라는 현판 글씨는 소암 현중화선생의 필체다.

 

일주문 뒷면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世界一花 祖宗六葉(세계일화 조종육엽)'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세계는 하나의 꽃이고, 조사는 6분의 잎으로 피어있다는 뜻인데, 세계는 부처를 의미하고,

6엽은 달마로부터 6조 혜능스님까지를 의미한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 언덕에 호랑이를 보듬고 있는 석조산신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단독으로 봉안하고 협시불은 두지 않았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이며 공포는 다포식이고 외2출목, 내2출목을 구성하고 있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전면에 깔았으며, 또한 천장은 우물천장을 기본으로 층단을 두어 만들었다.

 

기단은 거대한 막돌을 허튼층쌓기로 쌓아 만들었는데, 크기가 매우 거대한 돌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그 조형이 매우 뛰어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웅전 초석은 막돌초석을 사용하였고,

건물 중앙 어간은 사분합문이고 좌우 협칸은 삼분합문이다.

대웅전 외벽에는 십우도를 그렸는데 우현 송영방 화백의 역작이라 한다.

 

내부 중앙에는 수미단을 두고 이곳에 목조 석가모니불을 단독으로 모셨고,

그 상부에는 중층의 보궁형 닷집을 설치했다. 후불벽은 영산회상탱을 모셨다.

이 작품은 손연칠 교수의 작품이다.

 

대웅전 내부 좌측면에는 따로 단이 조성되어 이곳에 비로자나불과 비로자나불후불탱을 모셨다.

오른편에는 지장보살과 지장보살탱을 모셔 지장단을 꾸며 놓았다.

 

대웅전 좌측 벽면에는 신중탱과 제석탱을 모셔 신중단을 꾸몄다.

제석탱의 기록에는 불기 252년에 이를 조성했다고 하는데('帝釋幀 佛紀 二五二年 戊寅……')

중간에 '四'자가 누락된 것으로 2542년(1998)에 조성된 탱화이다.

 

근래에 조성된 범종각

 

 

대웅전에서 왼쪽 계단으로 조금 올라가면 자연석 바위 측면에 양각으로 과거칠불과

미래억겁부처님 53불을 함께 조각해 놓은 불조마애여래좌상(佛祖磨崖如來坐像)이 있다.

우리나라에 과거칠불과 미래53불을 모신 곳은 금강산 유점사의 금동불과 1698년 호암대사에 의하여

조성된 선암사의 목불뿐인데 이중 유점사의 부처님은 6.25때 소실되어 없어지고 현재는 선암사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따라서 마애불로 60분을 조각한 불상은 금둔사가 유일하다.

 

금둔사의 요사채

 

금둔사에는 두개의 산신각과 석조산신상 등 총 3분의 산신이 한 사찰 안에 봉안되어 있어

답사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대웅전 뒤편에 자리한 산신각 옆의 석조마애비로자나불(石造磨崖毘盧遮那佛)은

높이 5m쯤 되는 바위에 새긴 양각의 비로자나불좌상이다.

1983년에 중창주 지허스님이 복원하면서 법신 비로자나불을 새겨 모셨다고 한다.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금둔사지 석불비상(石佛碑象)으로 올라가는 정겨운 돌계단이다.

 

대개의 석불상이 연화대좌 위에 모셔지는 것과 달리 보물 946호 석불비상(石佛碑象)

비석처럼 세운 넓은 돌 위에 두꺼운 양각으로 부처를 조각한 부조형의 석불이다.

이런 까닭에 석불비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이 불상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흩어져 있던 불상 조각을 주워 모아 1979년에 복원하였다. 대좌는 앙련석, 복련석, 지대석을 갖추고

있는데, 중대석의 존재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보개석은 신라계 석탑에서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옥개석과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하부 불상과 접하는 부분에 2단의 층급을 두었고, 네모서리는 석탑에서와 마찬가지로 끝부분의

전각만 살짝 반전되어 있다. 불상은 양손을 가슴부근에 들어올린 설법인을 취한 듯하고,

옷주름을 표현하는 주름이 양각되어 있으며, 머리 주위에는 두광을 표시하는 원형이 석재표면에

양각되어 있다. 불상의 뒷면은 많은 부분이 마모되어 형상을 알수 없는 동물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전면에는 바닥에 배례석이 놓여 있으며, 배례석 상부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팔각형 석재가 올려져 있다.

이 석불비상(石佛碑象)은 그 형식에 있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비석의 형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

매우 특징적이며, 석탑과 더불어 창건당시 금둔사의 모습을 가늠케 해주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석탑이며, 그 세부 형태가 전형적인 신라계 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랫단 기단에는 일반적인 가구식 기단의 모습을 새겨 넣었는데,

각 면마다 우주와 탱주를 표현하였다. 지대석은 탑신에 비해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장대석 8매를 돌려 지대석을 이루고 있다. 하대갑석은 4개의 돌로 구성했는데 각 부재가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있다. 상부 기단 역시 가구식 기단을 이루고 있고, 각 면마다 하층기단과 마찬가지로 

우주와 탱주를 표현하고 우주와 탱주 사이에는 팔부신중을 양각으로 새겨 넣었는데,

그 조형이 다른 석탑들에 비해 매우 뛰어난 미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각 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통돌을 사용하였으며 탑신부에는 모서리에 우주를 새겨 넣었고,

특히 1층 탑신부분에는 전면과 후면에 문비를 새겨 넣었으며, 측면에는 각각 공양상을 양각으로 새겨 넣었다.

각 층의 옥개석은 5단의 층급이 만들어져 있고, 낙수면 하부는 수평을 이루고 있다.

옥개석 네 모서리는 아주 힘차게 들어올려져 있고 그곳에는 풍탁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고 있다.

 현재 상륜부의 대부분은 사라져 없고, 탑 높이 4m 정도로 그 규모는 일반적인 크기를 보이고 있으며,

하부기단의 팔부신중과 1층 탑신의 공양상 등은 다른 석탑에 비해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면과 후면에 새겨진 문비

 

전면과 후면에 새겨진 공양상

 

2층 기단의 사면에 새겨진 팔부신중

 

개울가에 세워진 또다른 산신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