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 창업주 이병철 생가

徐白(서백) 2012. 2. 15. 23:21

 

  호암(湖巖) 생가(生家)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李秉喆)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1851년 호암선생의 조부께서 대지 면적 1,907㎡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유년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현재의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氣)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地勢)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南江)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明堂)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10년 1910년 2월 12일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는 선비 집안이자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병철 회장은 어린시절 한학을 공부하였고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진주에 있는 지수보통학교를 거쳐 이듬해에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옮겨 수학 하였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1961년에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를 발의하고 초대회장에 추대되었다. 1965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는 특유의 통찰력과 선견력으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호암선생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경제발전을 선도하였다. 또한 선생은 성균관대학교 운영을 통한 인재육성을 비롯, 문화, 예술,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 많은 업적과 교훈을 남겼다. 이병철 생가에는 처음 정미소 사업을 시작할 무렵 사용했던 집기들과 물품들이 아직도 전시되어 있다. 삼성그룹의 창업자로 잘 알려져 이병철 회장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관람객들로 주말이면 조용한 시골 동네가 활기 넘친다.

 

 

 

 

 

 

생가에는 회화나무를 비롯한 배롱나무와 태산목이 3그루씩 자라고 있으며, 정면에 보이는 나무는 상록활엽수 태산목이다.

 

이병철 생가에 있는 태산목이다. 태산목의 꽃은 레몬향의 좋은 향기와 함께 꿀을 많이 품고 있어 벌들이 활짝 핀 태산목에 많이 몰려 든다. 이병철 회장님의 꿈이 태산목의 정기를 받아 실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