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야기

사찰이야기31 - 운제산 오어사

徐白(서백) 2009. 12. 31. 12:30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오어사는 대한불교조게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그리고 오어사 창건 이후에 원효대사, 자장율사, 혜공대사, 의상대사께서 머물렀던 곳으로 신라의 4성(四聖)이 주석했던 우리나라 최고의 성지이다. 또한 운제산(雲梯山)은 원효대사가 수도 포교할 때 기암절벽인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는 원효암과 자장암을 왕래(往來)하기가  어려우므로 구름으로 다리를 놓아 오고 갔다 하여 ‘구름 운(雲)’자와 ‘사다리 제(梯)’ 자를 써서 운제산(雲梯山)이라 이름을 붙였다.

 

또한 오어사라는 절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와 혜공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서로의 법력을 겨루고자 개천의 고기를 한 마리씩 삼키고 변을 보았는데, 두 마리의 물고기 중에 한 마리가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이때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두고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해서 ‘나 오(吾)’자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일연 스님께서 지은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데, 스님은 1264년에 오어사에 머문 적이 있었으므로 당시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한 것이라 한다.

 

오어사는 "삼국유사"에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10대 사찰 중 하나로 원래는 항사사(恒沙寺)라 불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95년 오어지(吾魚池)에서 발견된 동종(銅鐘)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고려 말인 1216년(고종 3)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기간에 이 같은 우수한 동종을 조성할 정도로 사세가 컸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고려시대의 연혁에 관한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1736년(영조 12) 화재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741년(영조 17년)에 치철(致哲) 스님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형식의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원효암 가는 다리 건너 편에서 바라본 오어사(吾魚寺)와 오어지(吾魚池)의 전경이다. 만수(滿水)가 되었을 때의 오어사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겨울 가뭄으로 오어지의 물이 줄어들어 아름다움이 반감된 듯해 조금은 아쉽다. 

 

 

사찰의 경내로 진입하는 일주문이다.  정면에 '오어사(吾魚寺)' 편액이 걸려 있는데, 근대의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쓴 글씨다. 저수지 쪽으로 나있는 사찰로 들어가는 첫 문이다. 보통은 기둥을 한 줄로 세웠다고 해서 일주문이라 하며, 흔히 사찰의 초입에 있는 문을 일주문이라 한다.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쓴 글씨이다. 해강 김규진은 8세 때부터 장인 이소남(李小南)에게 글씨를 배우고 18세 때에는 청(淸)나라에 유학하였고,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에도 능했으며, 산수화, 화조화(花鳥畵), 사군자(四君子)를 잘그렸으며, 글씨는 대자(大字)를 특히 잘 썼다. 영친왕 이은(英親王李垠)에게 서법(書法)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특히 한국 최초로 사진술을 도입하고 어전(御前)사진사가 되었다. 또한 경향 각지에서 서화전을 개최하여 서화 예술의 계몽에도 힘썼던 인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다포식(多包式) 건물로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하였다. 창호는 빗꽃살문으로 화려하게 짜 각각 삼분합의 문을 달아 장식을 하였다.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여 연꽃으로 단청을 하였다.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여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아미타불을 모신 삼세불(三世佛)이다. 이 삼존불은 수인만 다를 뿐 상호(相好)와 법의(法衣) 등의 형식은 거의 유사하게 조성되어 있다. 머리 위에는 연꽃봉우리가 조각된 화려한 닫집이 있다. 불화로는 후불탱을 비롯하여 삼장탱, 신중탱,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오어사 대웅전의 빗꽃살문. 정제미와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춘 문살이다.

 

 

응진전(應眞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전각이다. 안에는 최근에 조성된 석가모니 삼존상과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어칸에는 4분합의 문을 달고 협칸에는 벽을 설치하여 창을 달았다. '응진,은 아라한의 음역으로서 '마땅히 공양 받을만한 큰 성인이라는 뜻'으로 응공이라고도 한다..

 

 

삼성각(三聖閣)은 근래에 지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에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삼성각 내부에서 칠성탱과 독성탱, 그리고 산신탱 대신 용왕탱이 봉안되어져 있다.

 

산령각(山靈閣)은 정면과 옆면 각 1칸에 맞배지붕의 건물로 최근에 지은 전각이다. 

 

 

산령각 안에 봉안되어 있는 1980년에 조성한 산신탱이다.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란 뜻이다. 법고 몸통은 나무로 구성하고, 양면에는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야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부착하여 만든다. 법고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며 축생의 제도를 위해 예불때 가장 먼저 친다. 두개의 북채로 마음 ‘心’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한마음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요, 한마음 깨달으면 곧 부처이니 마음의 눈을 뜨라는 의미에서 ‘心’자를 그리면서 치는 것이리라. 새벽 예불때는 음양설에 의해 양에 해당하므로 수소가죽 쪽을 치고, 저녁 예불때는 음에 해당하는 암소가죽 쪽을 친다고 한다.

 

 

범종각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최근에 지었으며, 안에는 불전사물인 범종과 목어, 운판, 법고가 있는데,  범종과 운판은 최근에 조성하였고, 목어와 법고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목어는 나무를 깍아서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배부분을 파내어 두 개의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낸다. 목어는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며,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선종에서 사찰규범의 지침서로 삼았던 "백장청규"에 의하면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도 자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고,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 였으나, 차츰 용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갔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되였다. 용두어신은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어변성용(魚變成龍)을 뜻한다. 어변성용은 《후한서》이응전의 등용문(登龍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내용을 보면 “도화(복숭아)꽃이 필 무렵 중국 黃河의 잉어들은 센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서 상류의 협곡에 있는 龍門으로 다투어 뛰어 오르는데, 그곳을 넘어서면 용이 된다는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변해 용이 되는 등용문에 비유하였다.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물고기라는 중생이 용이라는 깨달은 보살이 됨을 뜻하는 것이다. 목어가 입에 여의주를 머금었다는 것은 대자재(속박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로운 것)를 얻은 물고기(즉. 보살)를 상징화 한 것이다.

 

 

 

오어사 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 원효대사의 삿갓인데, 1300년 전에 종이와 실로 연결해서 만든 것이며 안에 솜을 넣고 겉에는 풀뿌리로 엮어서 만든 지혜가 엿보인다.

 

 

보물 제12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오어사 동종은 1995년 11월 16일 오어지(吾魚池)의 바닥이 높아져 바닥을 파내는 준설 작업 도중에 발견되었는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 과정을 거친 후 1997년 7월에 오어사로 돌아왔다. 이 동종(銅鐘)은 신라 범종의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고, 동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조성연대가 분명하고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한 고려 동종으로서 각종 장식 문양과 더불어 주조 기술이 우수한 작품이다. 고려 고종 3년인 1216년에 제작되었는데, 몸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책임자인 대구 팔공산 동화사 순성대사와 주조 기술자인 대장(大匠) 순광(順光)에 의해 제작된 후 오어사로 옮겨 안치된 것이다. 종의 표면에는 천의(天衣) 자락을 휘날리는 비천상(飛天像)을 비롯한 섬세한 문양이 있어 고려동종의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고 있다.

☞ 동종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 블로그의 카테고리 '사찰조형물'에서 '오어사 동종' 참조

 

 

 

오어사에서 바라보는 자장암은 운제산 꼭대기 암봉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있다. 가파른 기암절벽 위에 자리 잡고있는 자장암의 아슬아슬한 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고있다. 원효대사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는 원효암과 자장암을 왕래(往來)하기가 어려우므로 구름으로 다리를 놓아 오고 갔다 하여 ‘구름 운(雲)’자와 ‘사다리 제(梯)’ 자를 써서 운제산(雲梯山)이라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실감나는 풍광이다.

 

 

 

자장암 앞의 능선에서 바라본 대웅전의 모습이다. 좌측으로 조그마한 건물은 삼성각이며 칠성여래와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으며, 산신탱은 별도의 산신각을 지어 봉안했다.  향 우측으로는 근래에 새로 불사한 대성전(大聖殿)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