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든 관세음보살상
봉화산 정상의 호미 든 관세음보살상(1959년 4월 5일에 봉안,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소재)
50년 전 자유당 정권 말기, 국토는 황폐화되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여, 국민들은 보릿고개의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감싸줘야 할 불교조차 비구와 대처의 싸움으로 세상을 등지고 있던 시절이다.
이에 분연히 일어선 동국대 불교대학의 청년 불교학도 31명이 참신한 뜻을 모아 불교혁신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기치로 내걸고 나섰다. 그들은 그 상징으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정상에 ‘호미를 든 관음상’을 세웠다.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을 뽑고 보리심(菩提心)을 심어 진리를 캐고자 하는 뜻을 지닌 호미 든 관음보살상은 세계 불교사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노동하는 관음보살의 형상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시대를 앞질러가면서 실천하는 불교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정토원 선진규 원장의 말에 의하면 “호미든 관음상은 심신(心身), 사회, 경제, 사상의 개발이라는 4대정신을 담은 것이며, 민중구제를 위해 잡초를 뽑고 씨를 뿌리는 것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희망의 씨앗을 가꾸는 민족정신의 개혁을 상징한다”고 한다.
당시 어디나 마찬가지였지만 봉화산도 땔감으로 나무가 베어진 민둥산이었다. 마침 관음상을 봉안하는 날이 식목일이어서 그 주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봉화산에 나무를 심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나무를 심은 학생 중에 미래에 대통령이 되는 중학교 1학년 노무현 학생이 있었다는 것. 선 원장은 “나중에 노 전 대통령이 ‘방안에 있던 부처가 밖으로 뛰어나온 날, 나도 나무를 심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