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야기

서백(김춘식)의 사찰이야기198 - '조선왕조실록' 보관 사고(史庫)을 관리한 사찰, 적상산 안국사

徐白(서백) 2021. 7. 22. 22:19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적상산(赤裳山)에 있는 조선후기 광해군 연간 증축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1277년(충렬왕 3)에 월인(月印)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복지(卜地)인 적성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1613년(광해군 5) 3월에 증축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이면광(李冕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승병의 병사(兵舍)로 사용되었으며 주변에는 조선실록을 봉안하였던 사고(史庫)의 옛터가 남아 있다.

 

그리고 안국사가 무주 내륙의 깊숙한 적상산 정상 가까이 높은 데에 자리 잡게 된 연유는 바로 사고(史庫) 때문이다. 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정신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 땅에서 가장 안전한 지대에 보관하고자 하였다.

 

해발 1000m의 고지대이며 내륙 깊숙한 지점이고, 적상산 자체가 요새 지형이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공격하기가 어려운 지형이었다. 거기에다가 적상산 정상 부근이 비교적 평탄한 평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안국사가 자리한 곳은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곳이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자리한 지역이 수몰지구로 편입되었으므로 호국사지로 옮겼기 때문이다.

 

1991년에는 일주문, 선원, 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하였고, 이듬해 극락전, 천불전, 요사, 청하루 등도 이전 복원하였다. 1994년에는 범종각을 지었고, 1996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위 당우 외에도 지장전, 삼성각, 일주문, 요사채가 있으며 극락전 안에는 영산회괘불탱(보물)이 보관되어 있다. 괘불은 천재지변을 몰아내는 이 고장의 신앙물로 전하여지고 있으며, 표면은 비단, 뒷면은 마(麻)로 되어 있다. 이 괘불은 의겸(義謙) 등 비구니 5명의 공동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적상산 안국사 일주문 

〈赤裳山安國寺〉 편액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의 필적이다. 선생은 일찍이 구양순, 미원장, 동기창, 황산곡, 유석암, 하소기, 추사 등 중국과 한국 서예대가의 5서체를 두루 섭렵하고, 현대적 조형미를 갖춘 독창적인 ‘剛菴體(강암체)’를 확립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淸霞樓(청하루)'는 안국사의 해탈문(불이문)에 해당하는 누하진입의 건물이다. 루(樓)에 걸린 편액은 소남(素南) 이규진(李圭鎭) 선생의 글씨이다. 맑을 淸, 놀(노을) 霞의 ‘淸霞(청하)’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은은한 맑은 광명이 안개처럼 서려 있다’는 의미로, 이 문을 지나면 ‘대진리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안국사 성보박물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

극락전은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1613년에 중건하였고, 1864년에 중수한 건물인데, 1991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또한, 적성산성에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호국사비가 있다.

 

안국사의 주불전에 걸린 '極樂殿' 편액과 '聖寶博物館' 편액은 전북 익산 출신의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 1924~2008) 선생의 필적으로, 40여 년을 교직 생활을 하셨고 익산시와 군산시 교육장도 역임하셨다.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협시보살은 관음과 대세지보살)과 아미타후불탱화

아미타불은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十萬億佛土)를 지나서 있는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현재까지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극락세계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적인 세계로, 대승불교에서는 정토(淨土)의 대표적인 장소로 삼았다. 아미타불을 아미타여래, 줄여서 미타(彌陀)라고도 하며, 아미타불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 정토교(淨土敎)이다.

 

지장전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필적인 '地藏殿(지장전)' 편액.

 

지장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상(좌우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부터 미륵부처가 이 세상에 올 때까지 부처가 없는 세상(無佛時代)에 머물면서 육도(六道)의 중생들을 제도(교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분이 지장보살이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육도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 후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기에 ‘대원본존 지장보살(大願本尊 地藏菩薩)’로도 불린다.

 

'三聖閣(삼성각)' 편액도 '淸霞樓(청하루)' 편액을 쓴 소남(素南) 이규진(李圭鎭) 선생의 글씨이다. 

 

재물을 주는 산신, 자식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는 독성을 함께 모신 전각을 삼성각이라고 한다. 이 삼성은 불교 고유신앙이라기 보다는 도교나 토착신앙이 불교에 유입된 경우이다. 그래도 칠성여래는 부처님이고 독성은 깨달은 분인 아라한이지만, 산신은 엄격히 말하면 아직 중생이다. 따라서 칠성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 독성을, 우측에 산신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95년 4월 8일(乙亥四月八日),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선생이 쓴 '千佛殿(천불전)' 편액.

 

천불전에 봉안된 석가모니삼존불

문수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좌협시로서 석가모니의 지혜를 상징한다.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쥐거나 왼손으로는 연꽃을 지니기도 한다. 연화대에 올라 있거나 청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보현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우협시로서 석가모니의 수행과 행원을 상징한다. 손에는 연꽃을 쥔 모습이거나, 합장한 모습이다. 연화대에 올라 있거나 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안국사 천불전의 두 보살은 머리에 쓴 보관에 사자와 코끼리를 배치하여 보살의 존명을 알 수 있도록 표현하였다. 다른 사찰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특이한 경우로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부처님이 지닌 대표적인 두 힘을 형상화한 것이다.

 

괘불석주의 구멍을 통해 본 천불전
천불전 서측면에 모셔진 부처님 존상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달은 사람(覺者)을 의미한다. 즉,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다불사상이 등장하게 되면서 천불전이나 삼천불 등이 조성되게 되였다. 삼천불전(三千佛殿)에는 과거천불, 현재천불, 미래천불이 있다. 이를 각각 과거 장엄겁천불, 현재 현겁천불, 미래 성수겁천불이라 하며, 천불전은 현재 현겁천불을 모신 곳이다.

 

앞쪽 건물은 불전사물을 봉안된 범종각.
범종의 종신에 표현된 비천상 - 병향로(柄香盧)를 들고 부처님께 향을 공양하는 비천(飛天)
삼성각 앞에서 본 안국사 전경
한자가 적혀 있지만 판독이 되지 않아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돌기둥. 무척 궁금^^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필적인  '梵鍾閣' 편액.
괘불석주의 측면에 남아 있는 금석문이다. '雍正8年四月十三日立'이라고 적혀 있어 1730년(조선 영조 6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괘불석주(掛佛石柱)는 사찰에서 행해지는 큰행사에는 많은 불자(佛子)들이 참석하게 되면 비좁은 대웅전 안에서 법회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부처님을 대신하여 두루말이 그림 형태의 괘불을 대웅전 앞 마당에 두개의 깃대를 세워 걸고, 더 많은 신도들이 부처님을 볼 수 있게 하였던 깃대를 고정하는 석주(石柱)이다. 외형은 당간지주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무주 안국사 영산회괘불탱(보물)

길이 10.75m, 폭 7.2m 크기의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다보여래, 문수, 보현보살이 있고, 왼쪽에는 아미타불, 관음,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석가모니는 화면 중앙에 서 있는 모습이다. 의겸 등 여러 승려 화가들이 그린 이 그림은 본존불을 강조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조선 정조 16년(1792), 순조 9년(1809)에 뒷벽을 새단장한 기록이 있어 승려화가인 의겸이 활약한 영조 6년(1730)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수발전소가 있는 적상산 전경. 상부댐 위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현재의 안국사가 위치하고 있는 장소이다. 

포토 및 글쓴이 : 서백 김춘식 - 위에 기술한 내용 중에는 한국의 사찰(대한불교진흥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재청, 주간조선 - 조용헌의 영지순례, 그리고 Daum에서 배포한 자료 등의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한 글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