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부산 속 들여다보기, 속속들이 부산투어 중구편 - 서백 김춘식

徐白(서백) 2016. 8. 29. 11:50

부산광역시와 부산일보사, 서비스기업경영포럼이 공동 주최하는 속속들이 부산투어 중구 편이 지난 820일에 진행되었다. 부산 3대 빵집 중의 한 곳이기도 한 백구당 앞에서 모여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애환이 서린 40계단을 거처 또따또가, 백년어서원, 동광동 화국반점, 백산기념관, 청자빌딩, 일제 방공호, 초량왜관의 최고 책임자인 관수가 살았던 관수가, 고갈비골목, 부산 최초의 아파트인 청풍장과 소화장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속속들이 부산투어, 중구편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 사항들을 설명하시는 이정실 교수님과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

 

 1959년 처음 문을 연 빵집 백구당(白鷗堂)은 부산의 3대 빵집 중 한 곳으로, 5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부산의 시조(市鳥)가 갈매기인데, 이 빵집은 '흰갈매기'이란 뜻의 흰 백()’갈매기 ()’자를 사용한 백구당(白鷗堂)’이다.

 

중구편 해설을 진행하고 있는 권미분 해설사의 모습 

 

40계단은 부산 중구에 위치한 문화명소이다. 한국전쟁당시 이 부근에 거주하던 피란민, 부두노동자들의 애환을 기리기 위해 국민은행 중앙동지점부터 40계단까지의 거리를 '40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로 조성해 놓았다. 특히 40계단은 경상도 아가씨라는 노래에 나오고,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등장하면서 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사십계단은 부산 중앙동과 동광동 사이에 있는 40개의 층계로 이루어진 계단을 말한다. 지금은 옛날의 그 계단 모습은 사라지고,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옮겨져 화강석으로 깨끗하게 재단장하였다. 피난민의 삶과 애환이 스며있는 40계단은 6.25 동란으로 말미암아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들이 40계단 주변에서 시중에 흘러나온 구호물자를 파는 장터를 열었다고 한다. 40계단의 중간에 앉아 있는 청동 나그네는 피난 중에 헤어진 형제를 그리워하며 지금도 손풍금을 켜고 있다.

 

중앙동 일대에 조성된 원도심 문화예술 창작공간 또따또가40계단을 중심으로 반경 50023개 건물에 77개 창작공간이 자리잡고 있고, 개인작가 38명이 활동하는 이곳은 공동화 현상이 나타난 원도심권의 빈 주택·유휴 상가 건물 등을 활용해 복합적인 문화 창작 공간을 만든 곳이다.

한편 또따또가사업은 2015년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의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을 받았고, 올해는 멕시코시티 국제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따또가'는 관용, 배려라는 뜻의 프랑스어 '톨레랑스'에서 '', 예술가와 시민이 떨어져 살지만 또 같이 모여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따또', 열린공간이라는 의미에서 ''()를 따와 만든 합성어이다.

 

2008년에 인문학 카페 백년어 서원(百年魚書院)’이 공간을 확보하여 수리하고, 문화사랑백년어이사회를 구성하여 개원하였다. 20094월에는 건물 2층에 인문학 북 카페 백년어 서원을 개원하였고, 2011년에는 건물의 1층까지 확장하여 상상 공간 아르케를 열었다. 백년어(百年魚)는 앞으로 백 년을 헤엄쳐 갈 100마리의 나무 물고기를 뜻한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중앙동 화국반점은 간자장면과 탕수육 맛 하나는 최고라고 한다. 그리고 부산에 거주하는 화교들이 최고로 꼽는 음식점이 바로 이 화곡반점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간자장면이라고 하면 간을 맞추어 먹는 자장면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뜻이 아니라서 민망하다. 화국반점에서는 간자장면에 들어가는 춘장은 분명 다르다고 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간자장면은 농도가 짙은 춘장이 별도로 나오고, 면(麵)은 마른 면이 나오기 때문에 마를 간(乾,하늘/마를 간, 건)을 붙여서 간자장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탕수육은 쏘스의 맛과 고기의 육질, 튀김의 정도 등 삼박자가 멋지게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란다. 부산일보 박종호 기자가 옆에서 한 말씀 거든다. 간짜장 먹으러 시간 내어 꼭 한 번 가시라고 필자에게 권하니 다음에 꼭 한 번 먹으러 가야겠다.

 

 

 

일제 강점기에 백산상회(1914~1919)와 백산무역주식회사(1919~1928)가 있었던 자리에 백산기념관(白山記念館)을 건립하였다. 백산기념관은 오랫동안 백산 안희제(安熙濟)(1885~1943)의 항일 정신을 계승하는 데 앞장섰던 백산기념사업회의 노력과 당시 문민정부의 지원으로 19953월부터 8월까지 총 24억 원을 투자하여 1995815일에 개관하였다. 유물 전시 위주에서 벗어나 극장과 갤러리, 세미나실 등을 갖춘 기념관으로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다.

 

 

 

동광동에 자리한 3층 규모의 청자빌딩(총면적 652) 1918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부산지역 최초의 금융기관 건물로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이 입주했던 곳이다. 한때 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역사성이 있는 근대 건축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부산시가 2015년도에 185천만원을 주고 건물을 매입했다

 

방공호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투어 참가자들

 

동광동 아로마호텔 건물 뒤에 위치하고 있는 일제 방공호의 입구

 

또 다른 건물의 실내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방공호의 실내 광경. 일제강점기의 거친 세월을 말해 주는 흔적이 남아 있는 일제 방공호(防空壕)이다. 연합국 비행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절벽을 파서 방공호를 조성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건물 뒤쪽에 노출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찾아가면 바로 볼 수 있지만, 나머지 하나는 잠겨진 문을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방공호이다.

 

막혀 있던 방공호 벽을 허물어놓은 모습인데, 안쪽으로 방공호의 천장이 계속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이어져 있는 듯하다.

 

초량왜관 최고 책임자가 살았던 관수가(館守家) 건물이 있었던 곳에 남아 있는 계단은 현재 남아 있는 초량왜관의 유일한 유적이다. 이 관수가 37계단은 1880년대 초량왜관이 폐쇄되기 전까지 초량왜관 관수(최고 책임자)가 거주하던 관수가의 계단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묵묵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아픔의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40년 이상 고갈비 하나로 7080세대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남포동 고갈비 골목이다. 지금은 남마담집과 할매집만 옛 영화를 송두리째 끌어 안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 골목은 나에게도 아련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1980년 초부터 부산에 와서 생활을 하였는데, 어느날 지인이 고갈비 싸준다며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이 골목이었다. 처음에는 돼지나 소고기 쯤되는 갈비로 알고 은근히 기대를 하고 찾아 갔는데, 고등어구이를 두고 고갈비라고 해서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부산 최초의 아파트로 알려진 청풍장이다. 이 아파트는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시멘트와 모래, 그리고 자갈만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전한다. 부산에서 최초로 지어진 왼쪽 청풍장은 1941년에, 오른쪽 소화장은 1944년에 지어졌다. 세월이 흐름 속에 지금은 낡고 볼품없는 건물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 임시수도 시절에는 국회의원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구전이 있다.

 

 

모든 투어가 끝나고 '가정식 전문 가마솥'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다이아몬드 브릿지'의 음악 공연을 즐기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