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의 편액 모음, 일주문에서 법보전까지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그래서 해인(海印)이라는 말은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풍랑이 일던 바다가 잠잠해지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비치는 것 같이 온갖 번뇌가 끊어진 고요한 상태를 일컫는다. 즉 부처님께서 깨달은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해인사의 창건은 해동 화엄종의 초조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스님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 스님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서기 802)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하였다. 해인사에 관한 종합적인 문헌으로 「가야산 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의 연기(緣起), 실화(失火)와 중창의 역사, 대장경의 인경(印經)에 관한 여러 사적과 문헌들을 모아 고종 11년(1874)년에 판각한 것이다. 이「가야산해인사고적」에 수록된 문헌가운데 똑같은 이름의 「가야산해인사고적」(고려 태조 26년에 이루어진 것)과 신라 최치원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의 두 기록은 해인사의 창건을 소상하게 전한다.
우리의 옛 건축물들에는 대부분 건물의 이름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편액(扁額)이 걸려있다. 일반 민가에서도 볼 수 있지만, 서원이나 향교, 사당, 사찰, 궁궐 등에는 건물마다 출입문 위에 편액이 있다. 특히 수많은 전각들이 밀집되어 있는 사찰과 궁궐은 현대인들이 읽을 수도 없는 한자로 쓴 현판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을 찾았을 때, 편액을 통해 옛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절을 찾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편액은 우리 선조와 고승들의 체취가 그대로 베어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임을 생각할 때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찰의 편액은 해당 건축물에 모셔진 부처님과 전각의 성격 등을 담고 있기에 사찰 문화를 이해하려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한다.
흔히 현판(懸板)이란 용어가 일반화 되어 있지만, 그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담고 있는 말은 편액(扁額)이다. 현판은 ‘글씨를 쓴 널빤지를 걸었다’는 뜻으로, 널판지에 글씨를 써 건물에 내건 각종 시문(詩文)을 모두 포함하므로 범위가 매우 넓다. 편액은 ‘건물의 문 위 이마 부분에 써 놓은 글씨’라는 뜻으로 건물마다 딱 하나뿐이다. '편(扁)'은 '지게 戶'와 '책 冊'이 합쳐진 글자로 ‘글씨를 쓴다’는 뜻이고 '액(額)'은 건물 앞부분 높은 곳을 가르키는 '이마'라는 뜻으로 ‘문 위에 써 놓은 글’을 뜻한다.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에 걸려 있는 '伽倻山 海印寺' 편액(扁額) -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글씨
일주문에 걸려있는 '紅霞門' 글씨는 朱源榮(주원영)의 글씨이다. 홍하(紅霞)는 ‘붉은 노을’이라는 뜻인데, 붉은 노을은 푸른바다를 꿰뚫는다는 뜻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용맹정진을 통해 얻는 깨달음을 뜻하는 말로 성철스님이 평소 즐겨 하시던 말씀인데, 붉은 광명과 함께 불국토의 세계를 말하고, 또한 홍하문(紅霞門)이란 불국토인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문이다.
'海東第一道場' 편액은 경남 남해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박해근(朴海根, 1919∼1973년)의 글씨이며, 解脫門(해탈문)과 구광루에 걸려 있는 法宗刹(법종찰)도 그의 글씨이다.
천왕문에 걸려있는 '海印叢林(해인총림)' 편액 - 유당(惟堂) 鄭鉉輻(정현복, 1905∼1973)의 글씨, 경남 합천에서 출생하였고 일찍이 진주로 이주하여 활동한 서예가이다.
천왕문에 걸린 '鳳凰門(봉황문)' 편액
'誌公曾点地(지공증점지)' 편액 - 본래 국사단(局司壇)은 대비로전 자리에 있었는데, 대비로전(大毘盧殿)을 지으면서 옮겨 왔다. 건물의 정면에 국사단 현판이 있고, 좌측에 '誌公曾點地'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誌公曾點地’는 ‘지공이 점지한 곳’이라는 뜻이다. 지공(誌公)은 인도에서 온 고승으로 고려말 나옹선사의 스승이고, 나옹선사의 제자가 무학대사라고 한다.
'局司壇(국사단)' 편액
'海東圓宗大伽籃(해동원종대가람)' 편액이다. 편액의 관지는 '歲同治年乙丑仲秋萬波書(세동치년을축중추만파서)'라고 쓰여 있다. 동치(同治)는 청나라 목종 동치제의 연호이다. 1862년부터 1874년까지 쓰였다. 여기서 '乙丑仲秋萬波書(을축중추만파서)는 '동치 4년(1865년) 음력 8월에 만파가 썼다'는 뜻이다.
'佛緣閣(불연각)' 편액
해탈문 뒤쪽에 걸려있는 '海印大道場(해인대도량)' 편액이다. 관지를 보면 '癸巳菊秋 雩南(계사국추 우남)라고 적고 있는데, 계사년(1953년) 음력 9월에 우남(雩南)이 썼다는 뜻으로, 이승만 대통령께서 1953년에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해인사에 들러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硯経堂(연경당)' 편액(經의 약자 経)으로 관지는 '昭芸(소운)'이라고 적었다.
서예계의 대가로 알려진 송천 정하건(松泉 鄭夏建)이 쓴 '普敬堂' 편액이다. 추사 이래 최고의 서예가로 꼽히는 검여 유희강(1911~1976)으로부터 한문서예를 사사(師事)하였다. 송천 정하건 선생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1910∼1987) 회장과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의 서예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예가로도 유명했던 이병철 회장을 1978년부터 1985년까지 7년간 가르쳤고, 박찬호도 2002년 메이저리그 시절 슬럼프를 겪고 고국에 머물면서 그로부터 서예를 배웠다.
'海印梵鐘(해인범종)' 편액 - '甲子之夏'라는 관지는 1984년(갑자년) 여름에 쓴 것이다.
'介雲閣(개운각)' 편액
'梵鐘樓' 편액 - 추사 김정희 이래 최고의 서예가로 꼽히는 인천 출생의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1911~1976)의 글씨
1988년(무진년)에 쓴 '淸和堂' 편액, 관지에 '戊辰 伽倻山人'이라고 적혀 있다. 해인사의 다른 편액에서 '伽倻山人'을 적고 '慧菴'이라고 적힌 관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편액은 “공부하다 죽어라”는 추상같은 가르침으로 잘 알려진 전 조계종 종정 혜암스님(1920~2001) 글씨로 추측된다.
구광루(九光樓) 편액 - 조선말기 남천당 한규대사(翰圭大師, 1868~1936)의 글씨
'海印護國道場(해인호국도량)' 편액
'尋劒堂(심검당)' 편액
'觀音殿(관음전)' 편액
정면의 대적광전(大寂光殿) 편액(扁額) -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글씨
대적광전(大寂光殿) 향(向)좌측에 걸려 있는 法寶檀(법보단) 편액(扁額) -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글씨
대적광전(大寂光殿) 향(向)우측에 걸려 있는 金剛戒檀(금강계단) 편액(扁額) -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글씨
'大方廣殿(대방광전)' 편액(扁額), 관지의 '丁巳浴佛日 海岡 金圭鎭書(정사욕불일 해강 김규진)'은 정사년(1977년) 욕불일(불상을 목욕시키는 날이라는 뜻으로, 4월 초파일’을 달리 이르는 말)에 해강 김규진이 쓴 글씨이다.
'應眞殿(응진전)' 편액
'冥府殿(명부전)' 편액
'大毘盧殿(대비로전)' 편액
'獨聖閣(독성각)' 편액
'窮玄堂(궁현당) 편액
'選佛場(선불장)' 편액
구광루(九光樓)의 '小林是句(소림시구)' 편액 -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의 글씨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 편액 - 정삼품 통정대부를 지낸 조선 말기의 문신인 회산(晦山) 박기돈(朴基敦, 1873∼1948년)의 글씨
'普眼堂(보안당) 편액
장경판전의 수다라장(脩多羅藏) 편액 -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湖 ; 1810~1888)의 글씨
'法宗刹(법종찰)' 편액 - 경남 남해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박해근(朴海根, 1919∼1973년)의 글씨
장경판전의 법보전(法寶殿) 편액 -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위당(威堂) 신관호(申觀湖 ; 1810~1888)의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