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슬픈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부산 가덕도 일본군 포진지

徐白(서백) 2014. 7. 22. 07:46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뱃길만이 유일한 교통 수단이였지만, 2010년 12월에 개통된 거가대교로 인해 이제는 편안하게 다녀 올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이곳 가덕도에는 슬픈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인 외양포가 있다. 외양포 마을은 일본 전통가옥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마을이다.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구축한 포진지와 일본식 주거지가 지금도 생생하게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 주거지와 포진지는 100여 년 전 일본군이 쌓은 건물들이며, 군인막사, 탄약고, 사택, 사병내무반, 공동우물 등이다.

마을 뒤쪽 산기슭에는 일본군 포진지가 축조돼 있는데, 1904년 일본군들이 외양포에 들어와 마을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포진지를 구축한 외양포 마을 포진지는 일본군이 러일 전쟁 때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위해 쌓은 것이다. 철저하게 위장된 이곳에는 지금도 포대사령부 비석이 남아있고 산자락 포진지에는 일본군 막사와 포탄저장고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우리 후손들에게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역사학습관으로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안타깝다.

 

100여년 전의 일본 전통 가옥들이 현재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데, 한 건물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기와 지붕는 우리나라처럼 암키와와 수키와, 암막새 수막새로 구분된 것이 아니고 암수 기와가 한 덩어리로 만들어져 있어서 우리 기와와는 완전히 다름을 볼 수 있다.

 

 

외양포 마을의 또 다른 일본식 가옥

 

외양포 마을 전경

 

외양포 마을은 국방부 땅이라서 건물의 신축이나, 증축, 개축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 건물에 몇 가구가 살고 있는지는 각기 다르게 칠한 지붕의 색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2가구가 한 건물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건물이다.

 

외양포 마을 뒤쪽에 위치한 철저하게 은폐된 일본군 포진지 입구의 모습이다.

 

'司令部發祥地(사령부발상지)'라고 적힌 표지석이다. 또한 '司令部發祥地'라는 글씨 우측에는 작은 글씨체로 '明治三十八年四月二十一日築成'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내용대로라면 일본 연호 '明治三十八年'은 서기 1905년이므로, 이곳의 일본군 포진지는 1904년에 마을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 공사를 시작하여 1905년 4월에 완공하고 '진해만요새사령부'가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은폐된 아치형의 건물은 사병 내무반으로 사용한 곳이다.

 

 

 

들어가는 입구가 'ㄷ' 자로 만들어져 있어 외부로부터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완벽한 포탄저장고(탄약고) 건물이다.

 

 

포탄 발사 시에 나는 소음을 흡수하는 방음벽 시설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벽체의 모습이다.

 

 

 

 

 

 

 

 

 

러일전쟁(1904년~1905년) 때 일본은 일본 해군의 집결지였던 진해를 방어하기 위해 가덕도와 거제도에 포진지를 만들었으며, 부산 남구 이기대에도 포진지를 함께 구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