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야기

서백의 사찰이야기99 - 고성의 마터호른으로 불리는 거류산에 안긴 장의사

徐白(서백) 2013. 1. 8. 16:23

경남 고성군 거류면에 위치하고 있는 거류산(巨流山, 해발 570.5m)은 고성의 진산으로 일명 고성의 '마터호른'으로 불린다. 스위스 알프스에 깎아지른 듯이 삼각형 모양으로 서 있는 산인 ‘마터호른(해발 4,477m)’과 모양새가 꼭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 정상에는 소가야 마지막 왕의 피신처로 알려진 거류산성이 있고, 산 정상에서 보이는 전망은 일품으로 다도해와 고성 평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에 아낙네가 부엌에서 밥을 짓다 밖을 나와보니 눈 앞의 산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아낙이 놀라서 "산이 걸어간다" 라고 소리쳤고, 바로 산은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그 뒤로부터 걸어가던 산이라는 뜻으로 ‘걸어산’으로 불렸고, 그 산이 오늘날 고성의 진산 거류산이다. 그리고 거류산 자락에는 고성 출신의 산악인 엄홍길을 기리는 엄홍길전시관도 자리잡고 있다.

 

그 거류산의 품안에 안겨있는 전통사찰 장의사(藏義寺)는 신라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1년(632)에 창건했다고 알려졌다. 장의암의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인 1891년(신묘년)에 작성한 ‘고성부거류산장의암중창기문(固城府巨流山藏義庵重創記文)‘를 보면 당태종 정관 6년인 632년에 창건했다고 나와 있으나 이후에 사적을 알 수 없다고 나와 있다.

 

이후 1885년 을유년의 커다란 수해로 인해 장의사는 거류산의 원래의 사찰이 자리했던 위치에서 좀더 아래 쪽으로 휩쓸려 내려오게 됐는데 훗날인 1891년 성담 법운(聖潭 法雲)대사가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중창했다고 한다. 이 후 1920년 호봉(虎峰)스님에 의해 중건됐다고 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장의사는 안정사의 말사 내지는 산내암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해탈(解脫)의 염원을 품었다는 장의사는 이 후 6.25사변의 병화를 입어 퇴락해 있던 것을 1969년 정관(靜觀)스님이 법당을 중수하고 1979년 성허(性虛)스님이 다시 가람을 중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장의사(藏義寺)는 원래 천년고찰 통영 벽방산 안정사의 산내암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 말사이다.

 

거류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바다와 평야, 그리고 정상의 표지석과 산행 중에 능선에서 쳐다본 거류산 정상 봉우리의 모습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1년(632)에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는 장의사(藏義寺) 전경이다.

 

종무소 건물의 측면에 걸려있는 '藏義寺' 현판이다. 왼편의 관지(款識)를 살펴보면 '壬戌端午 崔盛潤(임술단오 최성윤)'이라고 적혀 있다. 1920년 호봉(虎峰)스님에 의해 장의사가 중건된 뒤 1922년(壬戌年) 음력 5월 5일(단오)에 최성윤(崔盛潤)이 쓴 현판이다.

 

원래의 '藏義寺' 현판 옆에 또다른 현판이 하나 걸려있는데 관지(款識)에 '三神山人 杲山書(삼신산인 고산서)'라고 쓰여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는데, 고산(杲山)스님께서 지리산 기슭의 쌍계사 조실(祖室)로 주석하고 있기 때문에 '三神山人 杲山書'로 표현하신 것이다.

 

중국의 전설에서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의 3산을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다. 〈사기 史記〉에 의하면, 이곳에 신선이 살고 있으며, 불사약(不死藥)이 있다 하여 시황제(始皇帝)와 한(漢) 무제(武帝)가 이것을 구하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보냈으나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일이 유명하게 전해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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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 건물이다. 이 건물의 측면에 사명(寺命)이 적힌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가구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의 보광전 건물로서 장의사의 주불전이다.

 

낙관이 없어 누구의 글씨인지 모르는 보광전(普光殿) 편액(扁額)

 

보광전 유리상자 안에 봉안된 아미타 삼존불 중 주불인 아미타불과 우협시인 대세지보살상은 목불로 아미타불과 같이 200년 전에 조성한 것이라고 하는데 대좌 위에 반가부좌로 걸터 앉아 있는 형상이 특이하다. 때문에 관음보살상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고 미륵불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좌협시의 관음보살상은 오래전에 도난 당했고 현재 보살상은 수년전에 다시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이다.

 

그리고 보광전이란 당호를 가진 법당은 우리나라에서 그 예가 드물다. "화엄경"의 7처9회 설법중 제2처가 보광법당회이고, 7처 보광법당 중회, 8처 보광법당삼회로 이루어졌는데 아마도 보광전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7처9회 : 제1처 보리도량, 제2처 보광명전, 제3처 도리천궁, 제4처 야마천궁, 제5처 도솔천궁, 제6처 타화자재천궁, 제7처 보광명전 2회, 제8처 보광명전 3회, 제9회 급고독원)

 

대개의 사찰에서는 칠성탱, 산신탱, 독성탱을 함께 봉안한 전각을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한다. 하지만 장의사에서는 三聖에 용왕탱을 한 폭 더 봉안하고 사성각(四聖閣)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칠성탱는 치성광여래가 주존이고, 산신탱은 호랑이와 함께 등장하는 산신이 표현되어 있으며, 독성탱화는 고승이 동자와 함께 표현되여 있으며 1973년에 석정스님이 그렸다. 용왕탱은 용을 타고 바다위에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사성각(四聖閣)에 봉안된 독성탱과 칠성탱이다.

 

사성각(四聖閣)에 봉안된 좌측의 산신탱과 우측의 용왕탱이다. 사성각의 산신탱은 보살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끄는데, 이는 거류산의 산신이 여성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천불전(千佛殿)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천 분의 부처님을 모셔놓은 전각을 말한다. 천불에는 과거천불, 현재천불, 미래천불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현재천불을 모시고 탱화로 모실 때는 삼천불을 모두 모시는 경우도 있다.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다불사상(多佛思相)이 등장하게 되면서 삼신불, 삼세불, 53불, 천불, 삼천불 등이 조성되게 되였다. 후불탱화로는 53불탱화, 천불탱화, 삼천불탱화 등을 모신다. 그런데 여기서 천이나 삼천을 한정된 숫자로 볼것이 아니라 수많은 부처님으로 이해해야 된다고 본다.

 

정면, 측면 각 1칸의 팔작지붕에 다포계 익공식 건물이고 안에는 근래에 조성한 범종이 걸려 있다.

 

장의사 요사채(종무소) 뒤쪽에는 부도 1기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