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강화 마니산 참성단과 소사나무

徐白(서백) 2012. 11. 3. 22:36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산42-1번지. 마니산(摩尼山)에 있는 참성단(塹星壇)은 사적 제1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한다. 고려 원종 11년(1270)에 보수했으며, 조선 인조 17년(1639)과 숙종 26년(1700)에도 고쳐 쌓았다. 제단은 자연석으로 둥글게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반듯하게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고려와 조선왕조는 때때로 이곳에서 도교식 제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단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성단을 단군시대의 종교와 관련시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일제시대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민족의 성지로서 주목받게 되었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제천행사가 거행되며, 전국체전의 성화는 이곳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채화하고 있다. 참성단이 과연 단군의 제천단인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강화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고, 단군과 연관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상고시대에 무시못할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1 - 마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가에 세워진 널판지에 적힌 글)

 

                                     (사진2 -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적은 글)

 

 (사진3 - 참성단의 神檀樹라 할 수 있는 수령 200년 이상 된 소사나무는 천연기념물 502호로 지정됐다.)

 

(사진3-1 : 초여름의 소사나무 잎)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소사나무는 해풍(염분)에 잘견디기 때문에 바닷가 근처나 산지에서 자라는 낙엽활엽소교목으로 추위에 강해 내륙지방에서 월동이 가능한 나무이다. 소사나무의 수피(樹皮)는 회갈색으로 잔가지는 적갈색을 띤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난형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10~12쌍의 측맥이 있고 잎 뒷면 잎맥 위에 털이 밀생한다. 암수 한 그루로 4~5월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수꽃이삭은 촘촘히 아래로 늘어지며 암꽃이삭은 포에 싸여 달린다. 열매는 견과로 과포는 난형으로 톱니가 있으며 2~5개가 모여 10월에 성숙한다.(식물정보 - 국립중앙과학관)

 

                                                   (사진4 - 참성단 앞에 있는 聖火爐)

 

          이 성화로(聖火爐)는 매년 전국체육대회 때 7선녀에 의해 채화된 성화를 보관하기 위해 사용한다.

 

 

                                                             (사진5, 6 - 참성단)

 

                           (사진7 - 해발 472.1m인 마니산 정상, 뒤편으로 참성단이 보인다.)

 

                                          (사진8 - 바위 측면에 새겨진 참성단 중수비)

 

                                         (사진9 - 바위 측면에 새겨진 참성단 중수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참성단 중수비'에는 참성단(인천시사적 제136호)을 새로이 보수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해 놓았는데, 바위 측면에 비문을 새겼다. 마니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참성단은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를 지내던 최석항이 관내를 순찰하며 마니산에 올랐다가 이곳이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시 전등사 총섭이었던 승려 신묵에게 명하여 새로이 고쳐 짓도록 하였다. 비는 조선 숙종 43년(1717) 5월에 마련해 놓은 것으로, 비문에는 ‘참성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 참성단에 대한 선조들의 뜻 등에 관한 기록들이 함께 적혀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생겨난 마니산

옛날 나무꾼 세 명이 나무를 하려고 마니산 중턱에 올랐을 때, 숲속에서 이상한 옷차림을 한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재미난 구경에 넋을 놓고 보고 있자니 노인들은 아예 술까지 주며 편히 보라고 자리까지 권하였다. 그러다 날이 저물어 집으로 가려는데 옆에 두었던 도끼 자루가 썩어서 흔적조차 없어진 것이다. 이상히 여기며 동네로 내려오니, 산 아래에선 훌쩍 300년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 노인들이 권해준 술은 바로 ‘불로주’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자료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