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에서 만나는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화진포(花津浦)는 동해와 연접하여 자연풍광이 수려하고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다. 포구에 기암괴석의 신비가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수심이 얕고 해저가 청아하여 주옥같은 백사장이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이루고 있다. 수천년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셔져 만들어진 화진포해수욕장은 호수와 교류되어 있는 염담호수(鹽淡湖水)로 해수욕장으로는 최적지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연어, 숭어, 도미 등 갖가지 어족이 서식하고 있다. 관광지로서도 아무 손색이 없는 소지와 요건을 풍부히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제 말까지는 외국인 별장지였고 해방 후 6.25 동란 전 적치하 때에는 김일성(金日成)이 쓰던 별장이 아직도 남아 있고 자유당때에는 전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휴양지로 사용되었었다. 특히 모래빛이 하얗기로 유명하고 모래에 모나즈(monaz)성분이 많아 모래를 밟으면 감촉이 부드럽고 개미등 곤충류(昆蟲類)가 살지 않으며 맑은 동해의 해수가 화진포 담수와 교차하여 해수욕장으로도 최적지이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호수의 이름은 원래 열산호(烈山湖)로 불리워졌다.
화진포 건너 마을에 열산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고 화진포 물속에서 옛날의 열산현(烈山縣)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해 큰 비가 내려서 열산현 마을이 송두리채 물에 떠내려가고 마을이 있던 곳이 차차 물에 잠기기 시작하여 지금의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 사람들은 열산동 산쪽으로 마을을 옮겼다고 하는데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여 물결이 일지 아니할 때에는 그 옛날 촌락이 있던 터와 담장을 쌓았던 자취가 보인다고 한다.(출처 :고성군청)
화진포의 성(城)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화진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별장으로, 일명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1938년 독일인이 지었고,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이 처 김정숙과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와 함께 여름 휴양지로 사용했으며, 공산당 간부들도 이용하였다. 1948년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이곳의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하 1층·지상 2층의 석조 건물로 1964년 육군에서 건물을 철거하여 재건축하였고, 1995년 개·보수하여 장병들의 휴양 시설로 사용하였다. 현재 내부에 한국전쟁과 북한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약 1km 거리에 있는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과 함께 역사 안보전시관을 이루고 있다. (출처 : 두산백과)
▲ 화진포 해수욕장
▲ 화진포의 성(일명 김일성 별장)
▲ 이기붕 별장
강원도 화진포에 위치하고 있는 이승만 별장은 대한민구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수시로 찾았던 별장으로 1954년 건립되었다. 1961년부터 방치되던 것을 1997년 7월 육군이 재건축하여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단층 석조 건물로 면적은 89.25㎡이다. 집무실·침실·거실을 재현하였으며, 이승만 부부가 사용한 침대·낚시 도구·의복·안경·장갑·여권·편지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을 전시하고 있다. 별장 뒤에는 친필 휘호·의복·소품·도서 등을 전시해 놓은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이 있다. 1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과 함께 역사 안보전시관을 이루고 있다. (출처 : 두산백과)
▲ 화진포 전설의 주인공 이화진 여인상
화진포 전설
옛날 이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해 마을에 구두쇠로 소문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려 하자 시주대신 소똥을 퍼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염불을 외며 소똥을 받아들고 말없이 돌아서 나갔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아버님의 큰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총고개로 올라갔다. 며느리가 쫒아오는 것을 보고 스님은 멈춰서서 시주를 받으며 "그대는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하고 하늘이 무너질 듯 한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봤다. 그러자 하늘에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이 살던 집이며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로 변했다. 스님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고, 며느리는 애통해 하다가 그만 돌이 되어버렸다.
그 일 이후 고을에 큰 홍수가 나고, 농사는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그 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화진포라는 이름도 이화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청정한 날에는 화진포 한가운데에 잠겨있는 금방아 공이에서 누런 광채가 수면에 비친다고 한다.